[하마의 하루] 조카의 영어에세이 쓰기

조금 짠하기도한데 너무 귀여운걸.

by 하마생각

내게는 초등학교 1학년 생인 조카가 있다.

조카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는, 가끔씩 우리 집에 놀러 올 때마다 학원 숙제를 가지고 오는데,

이번에는 '영어 에세이 쓰기'숙제를 가지고 왔다. 에세이의 주제는 '좋은 친구란?'이었다. 무려 영어로 5개의 (인트로 1 바디 3 결말 1) 문단을 써내야 하는 에세이였다.


외출한 엄마아빠 (나에겐 새언니와 오빠)에게, 먼저 숙제를 끝내고 놀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조카는 숙제를 펴고 꼼지락꼼지락 댔다.


그리고 숙제가 적힌 영어교재 이외의 모든 것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하하).


내가 읽는 책, 자기가 예전에 했던 낙서들..


그렇게 한참을 몸을 베베 꼬고 다른 데에 관심을 두더니,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 조카: 고모 그거 알아? 나 저번에 에세이 쓸 때 3개의 책이나 참고했어.

- 나: 우와! 대단한데? 책을 참고하는 거는 정말 대단한 거야~~ 그리고 또 양질의 글을 쓰기 위해 필요한 일이지.

- 조카: 근데 내가 봤던 책중에 친구에 관한 책이 있어. 그게 필요할 것 같아.

- 나: 오? 그래 그럼 빌리러 가자~~

(엄마와 나, 그리고 조카는 패딩을 둘러매고 부릉부릉 집 근처 도서관으로 갔다.)

- 조카: 찾았다! 책! (제목:더 위험한 과학책)


그리고 조카는 책을 한참 넘기더니 자기가 원했던 부분을 찾아냈다.

그리고 조카가 보여준 부분에는 이렇게 딱 한 줄 쓰여있었다. "로빈 던바는 평균적인 사람이 약 150명과 사회적 관계를 유지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푸하하하하.


그 책은 직접적으로 친구에 대해 얘기한 책도 아니고, 인간관계에 대해 몇 줄 쓰여있을 뿐이었는데 조카는 에세이를 쓰기 위해 그 책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 책이 없으면 글이 안 써질 것 같았나 보다.


엄마는, '○○이가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그 책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나'라고 했고, 나는 수긍했다.


그리고 다시 집에 와 조카는 그 책에 인간관계에 관한 부분 말고, 여러 엉뚱한 과학적 질문을 하는 글들을 한참을 읽고 까르르 까르르 혼자 웃더니, 이내 숙제를 펴놓은 테이블에 다시 앉더니 에세이를 써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엄마와 (나에겐 새언니) 약속한 바디 3번 문단까지 써냈다. (에세이를 쓰는 데는 단 1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조카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글 내용은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그리고 계속 게임을 하고 놀다 보니 외출했던 오빠 부부가 돌아왔고, 나는 오빠와 새언니한테 오늘 있었던 일을 전했다.


그리고 조카가 덧붙였다. "아마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서 책이 필요했나 봐!" (엄마가 한 말 그대로 기억했다 말했다..ㅎㅎ).


초등학교 1학년 조카가 너무 귀엽고 짠하기도 하고 기특했다.


#난 영어 에세이란 걸 고등학교 때 (그것도 특목고 유학반이라서..) 처음 써봤는데, 그리고 이제야 겨우 좋은 친구의 3대 조건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초등학생이 친구에 대해 영어 에세이를 써내야 하는 현실에 조금 씁쓸하다.

점점 더 많이! 더 빨리! 해내야 하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 가운데서도 꿋꿋이 성실히 해내는 우리 조카가 대단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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