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빠 만났을 때) 졸업 논문 하나 줘라."
큰아빠와의 점심약속을 알고 있는 아빠가, 집을 나서면서 말하신다.
"알았어~~~" 나는 대답했다.
오늘은 박사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뵈었던 큰아빠와 교회에서 재회하는 날이다.
어제 미리 큰아빠에게 오늘 교회에 갈 것이라고 연락을 드렸고, 큰 아빠에게 인사드리기 위해 일부러 3부 예배를 가는 것이다.
우리 집과 큰 집의 사이는 약간 미묘하고 불편하다.
먼저, 아빠와 큰아빠는 서로 앙심(?)은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서로 애틋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거의 남처럼 느껴진다. 크게 관심이 없고, 알아서 잘 살겠지 하는..
우리 엄마와 큰엄마의 사이는 조금 더 미묘하고 복잡한데, 큰엄마는 우리 엄마가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는지.. 약간 괴롭히는 입장이고 (우리 쪽 시선에서는..), 그 골은 깊고 오래되어서 우리는 오빠가 장가간 이후로는 명절을 같이 쇠지 않았기에 거의 교류가 없다. 그렇지만 재밌는 건, 큰아빠네와 우리 부모님은 같은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은 좋든 싫든 마주친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엄마랑 큰엄마는 같은 성가대다...!)
할머니의 죽기 전 소원은 우리 집과 큰집이 사이좋게 지내는 거라고 하셨지만, 사이좋게 지내는 것만이 best answer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겨우 서로의 안전거리를 확보한 느낌이다.
아무튼 큰아빠와 나의 사이는 나름 우호적이다. 큰아빠와 나는 둘이 따로 밥을 먹은 적이 여러 번이다.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큰아빠는 나를 예전부터 (나름) 이뻐해 주셨고 (아주 이뻐해 주신 것은 아니지만..), 나도 큰아빠에게 아주 가아끔 (외국에서 들어왔을 때) 연락을 드리고, 우리는 항상 그때마다 따로 식사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우리 집 대표 외교관 같은 사명감을 가지고, 큰아빠네와의 틀어진 관계를 최대한 우호적으로 유지하고자 밝고 긍정적으로 큰아빠를 대했다.
아무튼, 이번에도 박사 졸업한 기념, 그리고 조금 있으면 포닥으로 떠나기에 오랜만에 큰아빠와 만나기로 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박사 가기 전 만남에서와 비슷하게, 근처에 있는 백화점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식사시간을 기록해 보자면,
1. 큰아빠는 이번에도 맛있는 걸 사주셨다.
큰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한, 항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셨고, 맛있는 식당을 잘 아셨다. 이번에도 내가 평소에는 절대 안 갈 것 같은 백화점 식당에 솥밥집을 데려가 주셨다. 역시 맛있었다. 우리 아빠도 맛집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시는데 아무래도 형제는 닮나 보다.
2. 큰아빠는 잘 지내고 계셨다. (일단 내가 파악한 바로는...)
큰 집과 우리 집은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에, 주로 우리가 전해 듣는 아니면 이야기하는 큰 집에 관한 이야기는 부정적인 사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에 뵈니 나름 지금의 은퇴생활에 만족하시고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 것 같았다. 우리 집도 중립적이려고 많이 노력은 하지만.. 약간 삐뚤어진 시선으로 큰집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큰집은 나름 화목하게 잘살고 계셨다. 다행이다.
3. 큰아빠는 나보고 이제 부모님 생각(걱정) 말고 미국에서 잘 지내라고 하셨다.
큰 아빠는 내가 최근까지 학생이고, 앞으로도 자리 잡는데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하신 걸까? 부모님은 크게 호강시킬 생각 말고 내 삶을 잘 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 부분은 살짝 씁쓸했다. 서른 중반까지 경제활동을 하지 않고 주로 공부만 한 나는 (박사 월급이 있긴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나오면 의기소침해지곤 한다. 누구든 노력한 대비 결과를 보고 싶지 않겠나. 나도 열심히, 성실히 살아왔고 누구보다 부모님께 잘하고, 보탬이 되고 싶은데.. 그러기 힘들 거란 어른들의 추측에 씁쓸하다. 또 내 노력의 가치가 인정을 못 받는 것 같아서 속상했다. 인정과 칭찬까지 바라는것은 too much 바람이겠지.
그렇지만 그냥 표면적으로 잘 지내라는 말을, "부모님한테 잘할 생각은 말고 (부담은 가지지 말고)"라는 말을 덧붙여서 하신 것이라 생각이 든다. 그 마음만 받아야겠다. 그다음에 덧붙여서는, "너희 집도 너한테 많이 지원해 줄 상황도 아닌 것 같고.." 이 말은 안 하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그냥 흘려듣기로 한다. (큰아빠는 물질기반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서 사고가 이렇게 흐르시나보다. '미국 가서 포닥하고 자리잡는 것 -> 부모님을 호강시킬 여유로운 삶은 아님 -> 어차피 부모님께 큰 지원 못받았으니 괜찮은것'. 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다. 물질적 지원이 넘쳐난 건 아니었을 찌 몰라도, 나는 유학 생활 내내 부족했던 적도 없다. 그리고 나도 부모님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이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물론 이런 말은 앞에서는 못하고 속으로 삼키었다. 아마 이렇게 말했으면 우리 집안의 관계는 파국으로 끝났을터.)
다음에는 내가 꼭 밥을 살 것이라 약속드리고 큰아빠한테 감사말씀을 전하고 헤어졌다.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 이유 없어도 연락드리면 반겨주시는 먼 가족인 큰아빠와의 오랜만의 시간.. 긴장도 했고 모든 부분에서 100% 유쾌하진 않았지만, 기분좋게 우호적으로 잘 뵙고 온 것 같아 다행이다. 다음에는 꼭 내가 맛있는 밥을 사드려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