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못한 나와 타인을 용서하기
식탁에서 엄마가 물어왔다.
"오늘 누가 설거지했어?"
내가 설거지를 했지만, 괜히 쫄아서 아빠라고 둘러대본다 (아빠 미안;).
나: "근데 왜?" 엄마가 뭔가 꾸중할 것을 찾아낸 것 같아 물어봤다.
엄마: "행주에 고춧가루가 묻어서." (이건 진짜 아빠가 범인이었다.)
그 말에 나는 괜히 심퉁이 나서 엄마한테 따져 물었다.
나: "근데, 95% 잘하고 5% 실수한 것에 대해서 5%에 대해서만 지적하면 너무 억울한 일 아니야?"
(멍텅이 박사인 나는 괜히 이럴 때만 논리적이다.)
엄마: 그래도 5% 보완해서 완벽한 게 좋지.
유레카! 뭔가 "나는 도대체 왜 나의 실수에 대해 관대하지 못할까?"라는 고민의 답을 얻은 것 같았다.
내가 일하다가 조금만 실수해도 자책감을 느끼고, 완벽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창피하고 부끄럽게 느낀다. 이런 감정은 꽤나 깊고 오래가서 마음이 금방 괴로워지곤 했다. 우울이나 불안의 감정은 내가 세워놓은 이상향에 닿지 못할 것 같을 때의 두려움과 좌절감에 기인한다고 하는데.. 내 불안도가 높은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아 뭔가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 부모님은 객관적으로도 그리고 나에게도 아주 훌륭한 분들이지만, 엄마는 '더 높이! 더 완벽히! 더 열심히!'를 지향하는 분이시다. 본인 스스로에게도 자식에게도. 나도 엄마의 그런 성향을 물려받았고, 그러한 환경에서 자라면서 스스로를 계속 push 하는 성향이 커졌던 것 같다. 이런 성향은 학창 시절, 공부를 줄곧 잘하고 주어진 task에 대해 집중하고 목표를 이뤄내는 것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는, 내가 설정해 놓은 이상향에 닿지 않았을 때 (거의 항상..) 좌절감을 느끼고, 내 효용성에 상처를 입는 느낌이 들어왔다. 그리고 항상 결말은 "다음에는 더 잘해야 해". 였다. 나름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충분히 노력했어."라고 이야기해 준 적은 없고, "내가 과연 최선을 다했나? 더 노력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내 노력자체에 의문을 갖고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이런 나에게 충격(?)을 준 사건들이 몇몇 있었는데,
하나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교환학생 갔을 때, 수학시험에서 80점대 후반을 받았는데, 나는 100점을 받지 못했기에 재시험을 보고 싶다고 선생님께 얘기했고, 선생님은 재시험 제도는 시험을 낙제한 학생들에게 만회할 기회를 를 주는 제도이고, 나는 충분히 높은 점수이기에 재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고 했다. 중학교 때 내신 1,2 점으로도 전교 등수가 바뀌는 환경에서 지냈던 나는, "충분히 좋은 점수"라는 개념이 낯설었던 기억이 난다. 또 미술 시간에는, 살짝쿵 미술에 재능이 있던 나에게 선생님이 "하마, 너는 정말 특별해"라면서 엄청난 칭찬을 부어주셨었던 게 기억이 난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림을 잘 그리는 편'이지만, '예고 갈 만큼은 아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나인데 말이다. 한국에서는 모든 과목의 평균을 내서 등수를 매기기에, 한 과목에서 과락하는 것은 엄청난 타격을 입는다. 하지만, 교환학생 때 미국에서는, 어느 하나만 잘해도 "그건 정말 특별한거야"라고 말해주는 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또 다른 경험은, 호주에서 석사 유학 때였다. 첫 에세이 과제에서 나는 80점대 초반을 받아 굉장히 자괴감이 들었었다. 오랜 시간 걸쳐 준비하고, 최선을 다해 쓴 에세이기에 기대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 실망한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라고 생각해서, 같은 class에 호주인에게 "나는 점수가 너무 낮게 나와서 속상해. 너는 점수 잘 받았어?"라고 물어봤는데, 호주인은 "응, 나는 내 점수에 만족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점수를 물어봤는데, 그는 "나? 76점인데. 나는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아니까. 이 점수에 만족해."라는 것이다..! (뜨악...! 나는 만약 70점대의 점수를 받았으면 자책감에 잠도 못 잤을 것 같은데 말이다.)
그때 처음. "나는 내가 완벽하지 않은 걸 아니까"라는 말을 들어봤던 것 같다. 나는 암묵적으로 "완벽하지 않으면, 더 완벽해지려고 노력해야지."라는 환경 속에서 자라왔고, (아님 나 스스로가 이렇게 생각하며 커왔고), 나의 모자란 부분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보완해야 하는 과제 같은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또 한 번의 경험은, 박사 유학 와서 처음 지도 교수님을 만났을 때였다. 그 당시 나는 펀딩을 못 받고 박사에 입학했고,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큰돈도 벌어본 경험 없이, 또다시 진학을 선택한 것에 대해 나 스스로를 계속 책망하고 있었다. 물론 나는 박사진학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결정한 거지만, 그 마음이 흔들릴 때가 많았다. (엄마는 내가 박사 준비 때, 그리고 진학과정에서 어느 지지도 없으셨는데, 나중에 물어보니 내가 박사 말고 결혼하고 취직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는 것 보니,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게 어느 정도 맞았고, 나 스스로를 책망하는 데에 일조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 교수님과 첫 만남에서, 교수님의 첫마디가, "Wow, you have achieved a lot! (와, 너는 지금까지 이루어낸 게 정말 많네!)"라는 것이다. 딱히 publish 한 논문도 없는 내게, 단지 여러 경험을 쌓았다는 것만으로도 마음 꽉 차는 인정의 말을 들은 것이다. 정말 기뻤다.
포닥을 가기 전, 여러 지인들을 만나면서, "하마, 너는 너에게 자신감을 더 가지고, 좀 더 당당해질 필요가 있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속상하게도 나는 그게 잘 안된다. 하루아침에 "I am not good enough."라는 생각에서 "I am good enough"라는 생각의 전환이 쉽지가 않다. 그 이유를 파고들다가, 슬프게도 한국에서 살면서 마음에 꽉 찬 칭찬이나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정말 객관적인 성과 (전교 1등을 한다던지, 대학에 합격했을 때라던지..)를 이루어냈을 때 빼고는 말이다. 성인이 돼서는 완벽하지 않은.. 큰 것을 이루어 내지 못한 나는.. 성인이되서도 딱히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나는 항상 나 스스로에게 "부족감"을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또 이런 성향은 쉽게 불안도를 느끼고, 내가 이뤄낸 성취에 대해 "충분히" 자랑스럽게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나의 이런 "완벽하지 않은 것에 대한 실패감"은, 타인에 대해 들이대는 잣대에도 연결돼서, 내 기대만큼 나에게 반응하지 않는 가족들(혹은 친구들)에 대해서도 쉽게 섭섭함을 느끼곤 했다.
나도 내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성실하고 정직하게 노력을 하면서 점점 더 "성장"해 나가는 것을 선택하는 나 자신을 뿌듯해하고, 대견해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한 나 스스로에게 진심으로 "you are good enough"라고 말해줄 수 있길. 그리고 타인에게도 똑같이 그들의 부족한 부분에 대해 좀 더 관대해지고 포용할 수 있는 포용력이 길러지길 마음속 깊이 바래본다. 나아가 나와 타인에게 "가슴에 꽉차는 칭찬과 인정"을 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