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박사시절 지도교수님

나는 그녀의 첫 박사생...

by 하마생각

미국 박사시절 지도교수님과의 인연은 내가 박사지원할 때 지원서에 그녀를 언급하며, 그녀의 박사생으로 일하고 싶다고 언급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니 이 모든 것은 나로부터 시작되었구나..)


그 시절 나는 지원서를 대량생산하고, 학교 이름과 일하고 싶은 지도교수님의 이름만 바꿔가며 지원했는데, 아마 내가 최종 합격한 학교 지원서에, (나의 지도교수님이 된) 교수님의 연구주제가 나의 관심주제와 잘 맞아 그녀를 언급했었던 것 같다. 그녀는 학생 지도 경험이 적은 assistant professor 교수이고, 우리 과 (Epidemiology)가 아닌 medical school소속이었던 것은, 박사 입학해서야 알게 되었다. (나의 naive 한 research의 결과다. 허허..) 어쨌든 교수님이 나를 받아준 덕에 박사에 입학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좋아! 일수도..


어쨌든,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는 박사생을 지도해 본 경험도 없고 박사생을 위한 펀딩도 없었지만, 학과에서 "괜찮을 거야~~, 펀딩 없어도 학생 받아도 돼"라는 이야기를 해서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는데, 정작 나는 입학할 때 학과에서 펀딩 문제에 대해 "지도교수님과 얘기해서 figure out 해봐."라고 했으니.. 우리 둘 다 학과에 속아 지도교수님-박사생의 관계가 성립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재밌는 건 처음 학기가 시작될 때, 나는 그녀에게 인사드리러 갔는데, 그것이 우리의 (미국에서의) 첫 만남이자 마지막 만남이 되었다. 두 번째 학기부터 코로나가 터져 모든 것에 virtual로 바뀌어 버렸고, 애가 셋이나 있는 나의 지도교수님은 내가 박사 졸업할 때까지 재택근무를 했으므로 내가 실제로 (미국에서) 그녀를 만난 건 입학할 때의 만남뿐이다. (두 번째/마지막 만남은 우간다에서였으니..).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그녀는 나에게 영어를 어떻게 배웠냐며, 그동안 이뤄낸 게 많다고 나를 칭찬해 줬고, 박사 졸업 때까지 나에게 충분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은, 딱 필요한 만큼의 지도를 해주었다.


30살에 박사를 시작한 나는, 빨리, 많은 성과를 이루어내고 싶은 열망이 있었고, 지도교수님에게 논문을 쓰거나 학회에 참여하고 싶다고 어필하였으나, 그녀는 항상 coursework에 집중하라던지, 졸업논문에 집중하라던지..."please relax.."의 자세를 취했다. 또한 나는 advanced 통계학을 적용한 연구를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교수님은 본인이 알고 있는 방법론을 선호하셨기 때문에 박사기간 내내 학문적 열의(?)가 채워지지 않아 많이 답답하고 속상하기도 하였다.


비록 교수님이 학문적 욕구는 채워주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좋은 스승님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 좋은 연구자의 자세를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빨리빨리~문화에서 자란 나는 스스로를 push 해서 항상 연구를 빨리 진행하기를 원했는데, 교수님은 내가 충분히 내용을 흡수하고 곱씹고 스스로의 언어로 설명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진행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졸업논문을 쓸 때 그 가르침을 따라,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러번 데이터 분석결과를 살피고 내 글을 수정해나갔는데, 그 경험을 통해 내가 수집한 데이터에서 스스로 의미 있는 insight를 추출하고 해석을 하는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다.


또한 내가 계속 job interview에서 실패해서 그녀에게 자문을 구했을 때, 그녀는

"You will get there eventually. Just hang in there."이라며, 내 노력이 부족한가 스스로 자책하던 나에게 큰 위로와 안심을 느끼게 해 주었고, 그녀의 말대로 절망의 끝자락에서 포닥 오퍼를 받게 되었다.


어쨌든 결론적으로는, 박사생 지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는 교수님과 박사 기간 내에 지도교수님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서로를 pick 해서 이루어진 조합 덕분에 얼레벌레 나는 박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박사 기간 내내 기대와 달리 minimum지도만 받는 상황에 좌절감도 느끼고 무기력감도 느꼈지만, 그래도 지도교수님을 탓하는 마음보다는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것에 집중했던 지난 시간에 대해 새삼 "그 기간을 잘 지나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포닥 때에는 원하는 학문적 발전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이뤄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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