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박사를 마치며 2: 나는 야반도주하여 한국에 왔다.
졸업 논문만 앞두고 한국으로 도망쳐온 이야기
그러다 박사 끝무렵에, 1년 반 정도 만났던 남자친구와도 이별을 하고, 박사졸업 후 그냥 결혼해서 평범하고 안정되게 살아보고 싶었던 나의 계획도 무너져버렸다. 논문 발표를 3~4개월 앞둔 시점에 모든 것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지고 쉬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졌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야반도주하듯이 짐을 싸서 무작정 귀국하게 되었다.
귀국해서 엄마가 해주신 밥을 먹고 푹 자고 일어나서 거울을 봤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가관이었다. 살은 10kg나 쪄있었고, 흰머리가 덕지덕지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뚱뚱하고 지친 나의 모습에 슬프기도 하고, 내 힘든 마음을 스스로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돌보지도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나는 정신과 상담도 받고, 운동도 끊어서 다니고, 마음에 관한 책도 읽으면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어떻게 이 무너진 마음과 몸.. 그리고 삶의 목적을 일으켜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일단 정신과 상담을 받아본 결과, 지금은 시기적으로 힘들 수 밖에 없고, 이별이나 박사논문을 앞둔 상황적인 것 때문에 더욱 불안도와 스트레스가 높을 수 있으며, 신체적으로 우울증이나 불안감이 일상생활을 방해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큰 문제는 없다고 얘기를 들었고, 나는 정신이 건강하고 강한 사람이라 잘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소소한 응원도 받았다.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어찌 보면 별이야기가 아니지만 의사 선생님 입으로 아무렇지 않게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그렇게 나는 불안한 마음을 붙들고, 하루에 조금이라도 꾸준히 졸업논문을 쓰고, 1시간 반 동안은 꼭꼭 운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리고 종종 마음이 너무 불안하고 지난날 (박사를 진학한 것, 전남자친구랑 교제한 것, 박사생활 동안 인간관계를 잘 맺지 못한 것 등등)에 대한 후회가 마음을 괴롭게 하곤 했기에, 최대한 내가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을 찾으며 살아보도록 노력했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므로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위로에 집중해보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신기하게 조금씩 조금씩 나에게 위로가 되는 요소들이 발견되었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나뭇잎, 집 앞 빵집에서 사 먹는 크림빵, 운동하는 체육관 선생님의 작은 친절, 생각이 너무 많아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을 때 옆에 다가오는 고양이 등.. 일상생활에서 사랑스러운 것들을 발견하고 그것에 위로를 받고, 감사를 느끼며,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조금씩 회복해 나갔고,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렇게 나는 살이 빠졌고, 마침내 졸업논문을 완성하고 박사를 졸업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