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의 끝무리에 겪은 혼란에 대해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명확한 아이였다.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하는 이유를 아프리카의 아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의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고, 그 나이 때 내 친구들을 대부분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았기에 꿈과 목표가 확실한 나에게 부럽다고 하기도 하였다.
의사는 되지 못했지만, 나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에 건강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비전은 놓치지 않고 내 전공의 방향을 정해갔다. 물질과학 공학을 전공한 후, 세포치료제를 만드는 연구실에 들어갔고, 좀 더 아프리카에서의 질병부담과 의료시스템 개선에 대해 공부하고자 국제보건 대학원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진행하는 모자보건 연구에서 1년 반 프로젝트 펠로우로 일하며 경험을 쌓아갔다. 그때까지도, 나는 내가 태어난 목적이 열심히 쌓은 학문적 지식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으로 굳건히 생각하고, 명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일단 관련 경험을 최대한 쌓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말라위에서 1년 반동안 살면서 일을 하는 동안, 많은 펠로우 동료들과 교수님들을 만났고, 나는 자연스레 박사진학에 대한 꿈을 꾸게 되었다. 연구라는 도구를 이용해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방향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나는 말라위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국제보건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박사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낮에는 일을 하고, 저녁에는 카페에서 새벽까지 영어공부를 하고 지원서를 준비하며 지냈고 겨우 한 대학에 붙어 Epidemiology전공으로, 아프리카 아이들의 철분부족과 말라리아에 대해 연구하는 교수님 밑에서 박사를 시작했다. 여기까지 경험을 통해 나는 '역시 나는 아프리카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선한 소망을 품었고, 그 길이 열리는 것을 보니 분명히 이 길이 내가 태어난 목적이고, 나의 삶의 소명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나의 인생의 목적과 맞는 길을 걷고 있다는 안심감과 뿌듯함이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고 의미가 바래진 것은 아이러니하게 박사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였다. 시작하자마자 일상생활에서의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졌고 마음에 불안감이라는 것이 차오르게 되었다. 먼저 생활적인 면에서 어려움이 있었는데, 박사 펀딩을 보장받고 온 것이 아닌, 1년 치 학비를 감당할 정도의 장학금을 받고 들어온 것이기 때문에, 1년 정도는 극도로 절약하는 생활을 하였고 그 이후에는 매 학기 펀딩을 찾기 위해 전전 긍긍하며 살았던 것 같다. 감사하게도 박사과정 중 펀딩이 끊겨 본 적은 없지만, 생활하는 데에 최소한의 돈을 가지고 사는 삶이란 쉽지 않았다. 또한 나는 차가 없었기에 동선이 한정되었고, 특히 장을 보는 일은 항상 골치이자 스트레스였다. 또한 학문적인 것도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나는 박사라는 한정적인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은 연구경험을 쌓고, 논문을 써보고 싶었는데, 우간다에서 주로 연구하시는 교수님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는 한정적이었고, 결정적으로 지도 교수님은 무리해서 연구하는 성향이 아니기에 항상 나보고 코스워크나, 퀄시험, 그리고 졸업논문이라는 기본적인 프로세스에 더 집중하라 하셨고, 내 욕심만큼 논문을 쓰거나, 학회에 참여하거나 하지 못하면서 나는 점점 무기력감을 느끼고 연구에 대한 흥미가 흐려졌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인간관계에 어려움이 겹치면서 스트레스는 극에 달하였다. 너무 좋은 친구들도 소수 만났지만, 내가 만난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전에 한국에서 만났던 친구들과 달리 불안감이 높고 저마다의 스트레스에 힘들어 보였고, 또한 성향이 잘 안 맞거나 나에게 주로 의존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사람 만나는 게 나한테는 소모적인 일과 심적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나는 삶의 의미를 붙잡고 있는 것에 관심이 적어졌고 내 삶의 안위를 설계해 보지 않고, 박사에 진학한 것에 대해 후회가 들기도 하였다. 나는 많이 지쳤고 외로웠고 마음이 메말라졌다. 그리고 박사과정 끝에서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건강을 다루는 국제보건보다는, 더 수월하게 펀딩을 받을 수 있고 연구를 활발하게 하는 암이나 치매등의 연구를 하는 친구가 좋아 보이기도 하고, 또 학계가 아닌 일반 사기업에서 워라밸을 가지고 별다른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하였다. 그렇게 나의 꿈은 흐려져만 갔고, 하고 싶은 게 점점 희미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