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생활 동안 무너진 인간관계에 대한 고찰
나를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연구가 아닌 인간관계
박사 졸업 한 달 차, 그리고 그전에 박사를 하던 미국 M주에서 야반도주해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는 거의 7개월 차에 접어든다.
하지만 아직도 이따금씩 박사 때 만났던 (그리고 내가 떠나보낸) 인연들에 대해서 생각이 나고 나의 마음을 괴롭힌다. 학부 때부터 (미국은 아니지만) 유학을 했었고, 어디서든지 자연스럽게 잘 스며들고 사랑받는 편이었던 나는 박사 때에도 친구를 만드는 것에 큰 걱정은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박사기간 동안 인간관계는 나의 마음을 제일 괴롭히는 요소 중에 하나가 되었고, 내가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은 이유와, 괴로운 마음을 달랠 (혹은 외면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 보았지만 그렇다 할 방법을 찾지 못하였기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이 마음의 짐에서 자유로워지길 바라면서... 최대한 이 글이 누구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닌 내 마음에 대한 고찰에 대한 결과이길 바라면서 글을 써본다.
박사동안 내 인간관계에 잡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한인교회에서 만난 A와의 갈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나의 학교가 있는 M주에 가기 몇 달 전에 M주로 결혼이민을 온 동갑내기 A와는 같은 나이라는 접점으로 친구가 되었다. 첫 만남부터 A는 미국생활에 대해 어려움을 토해내었다. Korean-American이랑 결혼을 해서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잘하고 있다가 미국에 온 그녀는, 영어에도 익숙하지 않고 하던 일도 그만두고 온 M 주에서의 생활이 무료하고 힘들다고 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나는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고, 그녀도 나의 생활에서 어려운 점 (이사라 던 지, 장 보는데 라이드를 해준다던지)을 많이 도와주었다. 나는 그런 그녀가 안쓰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그녀가 불편해졌다. 내가 보낸 카톡은 읽지 않고 묵혀두었다가 자기가 용건이 있을 때만 카톡을 보낸다던지, 아니면 모임 중에 자신에게만 이목이 집중되길 원한다던지, 나에게 함부로 얘기한다던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소한 그녀의 행동들이 나는 거슬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나는 사이였고 (그녀가 장을 볼 때 나를 항상 데리고 가 주었다), 나는 애써 나의 불편한 마음을 잠재우려 했고 그녀를 다정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내가 그녀에게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건, 박사 시작 후, 1년 정도 지나서였다. 박사 첫 학기를 마치고 코로나가 터져버려,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작되었고 나는 갇혀 지내는 생활과 박사 자격시험 (qualifying exam)으로 스트레스와 불안감이 차올라 있는 상태였어서 겨울방학 동안 한국에 잠깐 나가있기로 했는데, 그녀는 한국 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보자며 내 집에 찾아왔다.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그녀는 우리가 아는 공통 지인에 대해서 험담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그녀에게 정이 떨어져 버렸다. 이미 그녀의 선을 넘는 몇 번의 발언들 "(오랫동안 남자친구가 없던 나에게) 너는 연애를 그렇게 해야 할 텐데~~", "(내 남편이) 네가~~ 한 거 듣고 ~~라고 하더라고?" 등등. 에 대해서 그녀에게 마음이 많이 닫힌 상태였는데, 남의 험담을 하는 그녀를 보며 "아, 얘는 뒤에서 나에 대해서도 이렇게 쉽게 얘기할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이 생겼고, 나는 그녀가 정말 싫어졌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편하고 친해서 그런 말들을 늘어놓았을지 몰라도, 나는 친한 사이일수록 존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주의였기 때문에 그녀랑 더 이상 친구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교회에서 만난 사이이기에,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는 것이었다. 미워도 일주일에 한 번은 봐야 되고 내 친구가 그 아이의 친구였기 때문에 우리의 사이의 선긋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우리가 멀어지면 주변 지인들도 불편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를 최대한 피해서 지내다가 결국 그녀가 울음을 터뜨려 버려 대화를 시도하였고, 나는 그녀에게 그동안의 나의 마음을 꺼내놓았고 결국 그녀를 또 울리고 말았다. 나는 그런 일련의 상황들로 마음이 힘들었고, 그녀를 싫어하는 마음 + 죄책감 등등으로 인해 마음이 괴로워져만 갔다. 그리고 결국 그녀와 나는 맞지 않으니 거리를 두기로 결심하고, 그녀와 어울리는 것을 중단하였다.
문제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교회의 중심인물(?)인 그녀가 만든 모임에는 참가하지 않으니, 나는 자연스레 교회에서 하는 모임에는 참가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고, 나와 그녀의 공통 지인들도 그런 기류를 읽고 불편해했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는 동조하면서도 그녀와 멀어지면 교회 모임에서 도태될까 걱정하여 그녀와 최대한 잘 지내려는 부류도 있었고, 나에게 그녀에 대해 욕을 하면서도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그녀를 대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의 편이 되어주기 바라는 것은 나의 욕심이었는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모든 상황들과 인간관계들이 나는 덧없이 느껴졌고 박사를 졸업하여 그 작은 한인사회를 벗어날 날만 기다리게 되었다. 결국 무사히 졸업 후 떠난 건 아니지만, 박사과정 중 야반도주하듯이 한국에 들어와 버렸고 자연스럽게 그 교회 인연들과는 멀어졌다.
그렇게 물리적으로 멀어졌는데 나는 왜 아직도 마음이 괴로울까?
상대의 약점도 품어 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녀와 그 외의 친구들에 대한 원망하는 감정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내리지 못했다.
한 가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박사 때 나는 심적으로 외로웠고 불안했어서 좋은 인간관계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그게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아 실망감으로 자리 잡아 버린 것 같다. 내가 심적으로 너무 vulnerable 했을 때여서 어쩌면 주변이들에게 기대고픈 마음이 있었는데, 그 마음이 충족되지 않고 실망감으로 자리 잡아 내 안에는 상처로 남은 것 같다.
A가 절대적으로 잘못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내 마음의 약한 부분을 그녀가 건드렸고, 나는 무너져버린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같은 지역으로 포닥을 가기 전까지.. 나는 나의 상처 입은 마음으로부터 자유해지길 바라본다. 나를 힘들게 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나에게 언제나 힘이 되어준 인간관계와 경험들을 내 마음에 더 채우고 음미하고 감사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다음에 맺을 인연들에게는 상처받는 것이 무서워 벽을 두는 게 아니라.. 끝까지 다정하고 친절하기를 선택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