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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Sep 09. 2023

기능성 속옷을 아시나요?

15살 여름, 친구들은 교복 안에 속치마를 입었고

난 기능성 속옷을 입었다.

성격이 무뎌서 더운지 모르고 다녔는데

어느 날 보니 땀띠가 가득 나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엄마에게 못 입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짧은 기능성 속옷과의 추억은 뒤로 하고

대학교 2학년이 된 어느 날, 엄마는 다시 기능성 속옷을 내미셨다. 이번엔 올인원이었다.





'엄마, 답답해서 어떻게 입어요. 나 안 입을래.'


'이제 대학생이니까 좀 입어. 몸매도 잡아주고 얼마나 좋아. 너 어깨도 굽었잖아. 어깨가 펴져야 뭔 일을 하든 잘되지.'





마침 파트타임 일을 시작하면서 빠지지 않을 것 같던 살도 빠지고 있던 터라 몸매를 잡아준다는 말에

과감하게 올인원 속옷을 입기로 했다.

엄마는 39살 적에 기능성 속옷을 입고 기미가 없어졌다고 하셨다.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친정 엄마의 체형은 가히 유전적인 요소가 강하다.

세 분의 이모들과 엄마는 야리야리 호리호리 아담한 체형이다.

당시엔 우먼센스, 여성동아 같은 잡지가 꽤 인기였는데 엄마는 우먼 센스 '길거리사진' 코너에 찍혀서 

실리실 정도로 패션 감각도 좋으셨다.

반면 나는 외가의 체형을 찾아볼 수 없이 완전히 친탁인 체형이었으며 옷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아니라 이모나 언니 아니냐고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런 엄마의 유일한 고민은 광대뼈에 자리 잡은 기미였다.

당시 유명하다던 그 어떤 화장품을 발라봐도 쉬 없어지지 않고, 요즘처럼 피부과에 잘 다니던 시절도 아니라 고민이 꽤 많으셨다. 화장품 잡화점도 하셔서 여러 물건을 다 취급하셨지만 좀체 기미를 줄여줄 제품은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기능성 속옷을 입고 기미가 없어졌으니 엄마에겐 운명과도 같은 속옷이었다.

게다가 레깅스까지 한여름에도 입고 다니셔서 다리를 보호하셨다.

나이 들면 길 가다가 도 갑자기 다리가 휘청거리는데 엄마는 그럴 일이 없다며 기능성 레깅스를 예찬하셨다.


답답해서 어떻게 입고 다니나 고민이 많았는데 한 번 입기 시작하니 의외로 괜찮았다.

어깨도 잡아주고 뱃살도 눌러주니 옷을 입을 때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살이 빠지면서 입으니 더 이상 살도 안 붙는 것 같았다.

특히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루 종일 서서 수업을 해야 하는지라 거들까지 같이 입으니 군살도 잡아주고 

몸도 더 잡아주는 느낌이었다.

신발도 기능성 신발을 신고 압박 스타킹을 신었다.

속옷도 급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릴 땐 내 마음대로 속옷 가게에서 속옷도 사고 싶고, 내 취향이 아닌 속옷을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입어야 하나 싶어서 싫기도 했지만 아이를 낳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능성 속옷의 의미는 달라졌다.


슈퍼맨 클라크 켄트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하얀 셔츠 안에 슈퍼맨 옷을 입고 다니며 언제든 출동할 준비를 한다. 나에게 기능성 속옷이 그랬다.

속옷을 입고 출근을 하거나 외출을 하면 나도 모를 자신감이 솟아났다. 

자세도 더 바른 것 같고 옷맵시도 더 좋아 보이는 것 같았다.

코르셋처럼 조이지도 않고 편했다.


디자인과 색깔은 다양한데 요란한 무늬가 싫은지라 늘 베이지색이나 검은색만 입었다.

오랜만에 들른 엄마의 샵에서 새 속옷을 입었다.

이번엔 레깅스까지 같이 입으라고 하신다.


'이 레깅스가 테이핑 요법으로 되어 있잖니. 운동할 때 꼭 입어라. 요가 강사들도 다 사간 거야.'


이제 꼼짝없이 레깅스를 입고 운동을 해야 한다.

남편 말대로 나중에 재활 운동 안 하려면 입고 뛰어야지.

안다르, 젝시믹스보다 더 나에겐 귀한 기능성 레깅스.

이번엔 정말 살 좀 빼보자.

엄마,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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