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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Sep 06. 2023

나도 작가다

책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늘 행복하다.

아니, 며칠 전부터 설렘에 차있다.

어린 왕자가 오후 4시에 오기로 했다면 3시부터 이미 행복할 거라는 여우의 말처럼 나 역시 그랬다.

작가와의 만남이 처음은 아니지만 만날 때마다 기대가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좋아하는 책으로 가득 찬 책방에서 나를 위해 준비된 책을 들고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는 건 

살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 하나이다.

오늘도 그랬다.

'편성준 작가님'의 '리뷰 쓰기'가 주제인 글쓰기 강의였다.

이미 브런치 스토리에서 글을 읽고 있고 인스타그램에서도 팔로우하고 있는 작가님이라 더 반갑고 신기했다.

20년 차 카피라이터로 살면서 계속하고 싶지 않다는 결론에 다다랐다고 했다.

자그마치 20년이다. 

이미 그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고도 남을 시간이고 글 쓰는 거야 꾸준히 하던 일이니 이대로 하면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편하게 살았을 텐데, 이건 아니다는 생각에(물론 확실한 계기는 있었다) 사표를 던졌다. 일을 마무리하기까지 한 달은 더 걸렸지만.

글을 쓰고 책을 읽는 건 계속 좋아했지만 결정적인 글쓰기의 이유는 자신처럼 실수투성이에 바보처럼 살아도 괜찮다는 것. 회사를 그만둬도 큰일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작게나마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이다.

짜인 루틴대로 살아가는 한국인의 삶 속에서 점점 이렇게 느려도 괜찮고 일정 패턴을 벗어나도 괜찮다고 말하는 건 용기가 필요하다.

그 어려운 걸 해내지 말입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선택 후엔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인생의 매력이랄까.


 

오늘 한 가지 깨달은 것은 내가 글을 써도 된다는 사실이다.

백 프로는 아니겠지만 일프로 정도는 된다.

아. 방금도 절반이나 쓴 글을 실수로 지워버렸는데 정말 계속 써도 되겠지.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본업에 충실하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너무나 하고 싶어서 조직(?)에서 나와서 생계형 자영업자가 되었는데 처음의 그 열정은 어디 가고

책과 글쓰기에 집중하느냐 혼이 나고 있다.

이상주의자인 나를 깨우는 말이기도 하고 감사한 말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소하게나마 응원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정말 천지분간 못하고 날뛰고 있는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글을 쓴다는 사실이 인생에서 소확행이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새벽의 시간을 자꾸 탐하게 되는 것도 머릿속이 복잡해서일 것이다.

하루 중에 사람은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일어나면 그 시간을 사라지고 만다.

예수님, 부처님, 귀신이 활동한다는 그 영험한 시간에 나 혼자만의 고독한 시간이 필요하다.


글은 내가 읽어도 재미있는 글을 써야 한다는데 여름에 아픈 후로 유머가 쏙 들어가 버렸다.

어둠의 아우라를 걷어내고 오늘 만난 작가님처럼 웃기는 글을 쓰고 싶다.


뭔가를 할 때는 기를 쓰고 해야 한다.

글을 쓰려는데 하필 저녁밥을 해야 해서, 하필 주말 약속이 있어서.

하필 그때 정말 그렇다고?

마음의 에너지를 모아라.

그때가 아니어도 가능한 순간이 많으니까.


누가 보지 않아도 그냥 쓴다.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쓰다 보면 글은 써지고 차곡차곡 쌓여있을 테니.


바보처럼 살아도 안 죽고 실수가 많은 삶이 부자라는 작가님의 말이 햇빛에 잘 마른 이불을 덮는 밤처럼 포근했다. 나도 그래도 되겠지?


책 한 권 낸 적 없어도 '쓰는 사람'이니까 나도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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