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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Sep 08. 2023

나에게 샤넬백을 선물한 친구

대학교 동아리에서 만난 그녀는 직장인이다.

자그마치 14년 차다.

직장에서 나오면 뭐 할 게 있겠냐며 자기는 이 일밖에 모른다고 하지만

내 눈엔 직장에서 자기 몫을 해내고 있는 그녀가 대단해 보인다.

'한 분야를 깊게 송곳처럼 파내는 게 글쓰기'라고 김태윤 작가는 본인의 저서

<작가는 처음이라>에서 말한다.

허나 글쓰기뿐일까.

우리의 일상이 다 그런 게 아닐까.

너도 나도 N잡을 외치지만 결국엔 한 분야에서 송곳처럼 날카롭게 깊게 파본 사람만이

다른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

항상 지구력과 꾸준함을 보여주는 그녀는 나를 돌아보게 한다.


'넌 어쩜 그렇게 다양하게 관심이 많아? 아직도 공부가 그렇게 하고 싶어?'

라고 말하는 그녀와 오랜만에 브런치 카페에서 만났다.

오늘은 그녀의 연차 휴일이다.

지난여름 톰 오빠의 영화를 함께 보자고 했지만 결국 나의 일정으로 인해 혼자 영화를 보고 왔다.

이젠 뭐 혼자 영화 봐도 전혀 어색한 나이는 아니지만.

이번엔 영화를 함께 보기로 했다.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떠는 것도 좋지만 나중에 이 영화를 봤을 때 '그때 너랑 봤잖아. 2023년 기억나?'

이렇게 추억할 수 있도록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걸 하기로 했다.

대학시절 함께 거닐던 중앙도서관 길을 지나 극장으로 냅다 걸었다.

이미 상영 시간이 지난 지 10분이나 되었지만 평일이라 조금은 마음 편히 들어갔다.

좀처럼 늦지 않고 혹여나 미리 온 관객들에게 방해될까 걱정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관객은 우리 둘 포함 5명뿐이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다가 극장에서 나온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근처 쇼핑몰로 들어가서 가을 재킷을 샀다.

가을을 닮은 코코아색이었다.

돌잔치에 입고 갈 옷이 필요하다고 했다.

20대의 우리는 하염없이 걷고 로드샵부터 백화점까지 다 다녀본 후에야 옷을 샀다.

이젠 신속하게 요점 있게 옷을 살 줄 안다.

영원히 흩뿌려져 있을 것 같은 시간이 더 이상 있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돌아와 각자 아이들이 잠들고 난 후 카톡에서 만났다.








'나 그동안 왜 이렇게 애들만 보고 산거 같지? 일하고 애들 키우고 며느리, 딸 역할만하고.

이렇게 친구랑 만나는 거 자주 할 수 있었을 텐데'


'지금처럼 이렇게 또 만나면 되지. 우리가 뭐 멀리사냐? ㅎㅎ








오늘 그녀가 나에게 샤넬백을 선물했다.

선물로 책을 작은 에코백에 넣어서 갔는데 내 핸드백이 작아서 넣을 수가 없으니

이 안에 넣어서 가라는 거였다.

이 안엔 에코백이 들어있습니다. 샤넬 향수나 가방이 아니라요. 브런치카페에서 한 컷


아끼는 거라 여러 번 빨아서 가지고 다닌 에코백이다.

친한 작가님이 만남의 선물로 주신 거라 보배처럼 가지고 다닌다.

절대 명문대 로고가 새겨져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센스 있는 친구의 단정함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정갈하게 종이 가방을 모아 놓은 곳에서 나온 샤넬 종이가방

워킹맘이지만 항상 깨끗한 화장실과 살림살이들

아이들이 어려 물건들이 어질러져 있어도 절대 지저분해 보이지 않는 그녀의 집

이상주의적인 나에게 현실주의적인 그녀의 말들은 인생의 시소에서 균형을 유지해 준다.


친구야, 샤넬 종이 가방을 주다니. 넌 찐친이야.

네가 준 금전수도 잘 자라고 있어.

담엔 내가 샤넬 가방에 립스틱을 넣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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