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플러스를 구독하고 있다.
처음엔 굳이 구독까지 해야 하나 싶었지만 보고 싶은 영화가 많다 보니 잘한 결정이다 싶다.
디즈니 영화는 뭔가 아기자기한 아련함이 느껴진다.
1930년대에서 50년대 디즈니 영화를 보면 마치 더빙을 해서 입모양과 말소리가 안 맞는 억 박자며
재즈풍의 음악들이 너무나 편안하고 추억이 반짝거린다.
고전 영화로서 디즈니 공주 영화들이 남성 의존적으로 표현되었다는 말도 있으나
예전 신데렐라 영화를 보면 1편부터 3편까지 있는데 얼마나 본인의 삶에 있어서 진취적이고 긍정적인지 모른다. 아들들도 신데렐라 시리즈는 너무나 재미있게 보았고 음악과 노래까지 사랑한다.
특히 '비비디 바비디 부' 노래가 나오는 신데렐라가 공주로 변신하는 부분은 가히 압권이며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월트 디즈니'가 설립한 회사인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바로 위에서 언급한 여러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많은 실사 영화들을 만들며 성공의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 사후에 회사는 무려 20년간 침체기를 겪었는데, 그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건 '인어공주'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면서부터이다.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를 원작과 달리 해피엔딩으로 각색하며 뮤지컬 느낌의 구성과 노래를 넣어 완성했는데 엄청난 흥행을 이끌며 디즈니 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다. 아마 안데르센도 사랑의 완성이 이루어진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사랑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Part of your world' 나 'Under the Sea'이 두곡은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알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후 '알라딘', '라이언킹', '미녀와 야수' 등 수많은 히트작들이 만들어졌고, 2010년대 후반부터 이 영화들이 다 실사 영화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원작을 본 팬으로서 실사 영화가 무척이나 기대되었고, '미녀와 야수' 실사판, '알라딘', '라이언킹'의 실사판 영화를 보며 더 감동을 받고 음악까지 무척이나 잘 즐겼다.
특히 재스민 공주는 애니메이션 속 공주와는 달리 굉장히 주체적이고 왕의 자질이 충분한 리더십을 보여주는데 변화하는 시대를 잘 반영했다는 느낌이었다. 알파걸들이 나오고 주체적이며 똑똑한 딸들이 많은 세상이기에 자신의 나라를 사랑하고 잘 이끌고 싶어 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진정한 '멋쁨'을 느꼈고, 절대 편견과 악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스피치리스'를 들으며 가슴 뛰기도 했다.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인 '미녀와 야수' 속 '벨'도 마찬가지였다. 원작과 상당히 비슷한 싱크로율을 보여줬으며 구성과 무대, 음악까지 너무나 완벽했다.
그래서 실사판 인어공주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었다.
원작과 다른 '애리얼' 공주. 인종이 문제가 아니라 아름답지 않다는 반응.
거기에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인 '세바스찬'과 '플라운더'가 너무나 실사에 가까워서 거부감이 든다는 반응(이런 반응은 '라이언킹'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실사 영화 속 애리얼의 자매들인 나머지 여섯 인어 공주의 인종도 다양해서 바다의 왕은 백인인데 왜 딸들이 다 인종이 다르냐는 반응까지 모두들 #Not My Ariel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곤 했다.
사실 디즈니의 방향은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
인종의 다양성이 그 선두에 서있는 것 같다. 최근 '엘리멘탈'에서도 보면 다양한 인종들을 표현하지 않았던가.
특히나 거대한 영화 산업을 이끄는 할리우드에서 인종의 다양성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인종의 백화점으로 불리던 미국은 많은 진통을 겪은 후, 다양한 특징을 가진 나라로 교육에서도 드러나고 있으니까.
누구에게나 전형적으로 그려지는 이미지나 아름다움은 있다.
아이들과 같이 봤는데, 아이들은 영화를 흥미로워하지 않았다.
영화 '바비'는 싱크로율이 높아서 더 몰입되고 재미있었는데 '인어공주'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그 어떤 것이든 다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영화란 문화는 고정되지 않고 흐르기 마련이며 다채로움이 매력이다.
아이들의 거부로 사실 이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다만 영화 초반부부터 어쩔 수 없이 부모로서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애리얼은 인간 세상을 동경하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
실사 영화 속 애리얼은 그 부분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소도 따듯했다.
바다의 왕인 아버지는 왕비를 인간 때문에 잃었다며 인간 세상에 절대 나가지 못하게 금지시킨다.
특히나 난파선들이 바다의 산호를 파괴하며 바다 생태를 무너뜨리는 것을 참지 못한다.
이는 나머지 6명 인어공주들도 마찬가지이다.(애리얼의 언니들도 다양한 인종으로 표현된다)
영화 속에서 '에릭' 왕자의 캐릭터도 원작과 달리 더 두드려졌는데, 자신의 나라가 고립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적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진취적인 왕이다.
에릭 왕자의 어머니인 여왕은 왕자가 배를 타고 다른 나라를 다니며 항해하는 것을 걱정하며
바다의 왕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한다.
두 부모는 서로가 서로를 위협하며 죽일 거라고 아이들에게 절대 상대편의 세계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바다의 왕도 애리얼이 인간 왕자를 구해줬다는 걸 알고 모아놓은 동상들을 다 깨뜨리고 부숴버린다.
이 부분에서 아이들은 이건 마치 건담 피겨를 모았는데 부모가 말 안 듣는다고 다 없애버린 상황이라며 분개했고, 조카애들은 뉴진스랑 르세라핌 사진을 부모님이 다 찢은 상황이라며 분노(?)했다.
과연 나는 어떤 부모일까?
순간 '엄마는 저러지 않는데. 너무 속상하겠다'라고 했더니 대번에 큰아들이 '엄마는 안 그래요'라고 말했다.
속으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매일이 신비롭고 신기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걸 보며 귀엽기도 하다.
늘 우리 아이가 정말 원하는 삶을 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내 아이들은 애리얼처럼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엄청난 호기심이 많아 보이진 않는다.
그냥 본인들의 세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며 사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통제를 하지 않는 부모는 없는 것 같다.
일단 바다의 왕도 아내인 왕비를 잃은 아픔이 있다.
남매인 '우슐라'와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다.
늘 딸들에 대한 걱정, 특히 호기심 많은 막내 애리얼에 대한 걱정이 크다.
어쩌면 딸들 중 가장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애리얼이 애잔하고 짠해서 더 그런 걸 아닐까.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안쓰러운 자식이 꼭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만의 표현법으로 사랑을 말하는 건지도 모른다.
나도 디지털 기기는 10시까지만 하자. 유튜브는 이 정도만. 책은 이거 읽어야지.
말을 긍정적으로 하자 등등 많은 말을 한다.
10대의 영역에 들어선 아이들을 더 이상 모든 걸 통제할 순 없을 것이다.
그저 옆에서 안아주고 보듬어주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는 것.
그저 공감만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 하지 말고 들어주는 것.
순간에 아이의 생각을 고치려 하지 말고 들어주다 보며 아이는 스트레스도 감소되고 부모와 대화하는 게 부담스럽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지나친 간섭으로 아이의 날개와 주도성을 꺽지 않도록 돌다리 건너듯 늘 조심해야겠다.
나와 다르다고 아이가 틀린 것이 아니며
부모의 생각이 다 옳은 것은 아니기에 어른으로써 중심을 잡고 단단히 있어주려면 내가 먼저 단단한 사람이 되야겠다고 결론지어 본다.
결국 나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 가장 비법 중의 비법일 것이다.
영화를 끝까지 보지 않고, 중간에서 멈추었다.
아이들은 너무 재미가 없다고 했다.
우리는 늘 재미있는 영화만 볼 수는 없다.
그런 날도 있는 거다.
긍정의 언어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쁘지 않았다.
실사 영화 속 애리얼은 충분히 사랑스러웠고 호기심 많으며 용기 있는 역할에 아주 잘 어울렸다.
'재스민 공주'나 '벨'처럼 가슴이 벅찰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녀도 괜찮았다.
그녀는 나의 애리얼이 되었다.
현실 속 내 아이들도 애리얼처럼 세상 속으로 두려움이 나가길.
'아이들은 자유롭게 스스로의 삶을 살아야 하죠.' - 세바스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