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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Sep 17. 2023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누구에게나 가면은 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세 번째 작품이다.

전작인 '오리엔트 특급 열차'와 '나일강의 죽음'을 아이들과 흥미롭게 봤던지라 기대되는 영화였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인기만 밝히는 '록허트' 교수가 포와르 탐정이라는 사실은 언제 봐도 흥미롭다.

더군다나 그가 <토르 : 천둥의 신>의 감독이라는 사실도 놀랍다. 그 외에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양자경' (영어도 잘하고 연기도 얼마나 잘하게요), 영화 '셜록 홈스'에서 왓슨 부인인 켈리 라일리,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제이미 도넌과 히스 레저를 닮은 카일 앨런이 출현한다.

'베니스 유령 살인' 국내 공식 포스터


은퇴를 선언한 에르퀼 포와르는 경호원까지 고용하면서 베니스에서의 조용한 삶을 살고 있다.

작중 인물인 추리 소설 작가 에르아드네 올리버의 소설 속에 등장하면서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그녀는 유일하게 경호원의 차단 없이 포와르에게 사건을 하나 의뢰하게 된다.

이미 다른 사건을 통해서 만난 사이인지라 그녀는 포와르에게 유명 영매사의 술수를 파헤쳐 달라고 한 것이다. 사건을 맡지 않기로 한 포와르지만 그녀와 함께 고아들을 위한 핼러윈 파티에 참석하게 된다.

그리고 그날 밤 벌어지는 일련의 살인 사건들과 다음 날 아침까지의 일들을 다루고 있다.

바로 저택의 주인인 오페라 가수 '로웨나 드웨이크'의 딸 '알리시아'의 죽음과 그 일과 관련된 추가적인 살인사건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 <핼러윈 파티>와 <마지막 교령회>를 기반으로 각본을 만들었다.

원작 소설을 읽은 분들이야 익히 내용을 알고 있겠지만 나의 경우엔 이미 오래전 읽은 책인지라 내용이 가물가물하였고 추리 영화의 백미인 범인이 누구일지 상상하고 추론하는 과정을 잃고 싶지 않은지라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보러 갔다. 사실 이것은 멋들이진 핑계이고 베니스에서 펼쳐지는 포와르 탐정의 사건이기 때문에 본 것이 더 정확한 이유일 것이다.


흔히 추리 소설에서 그렇듯 이 이야기의 비가 거세게 몰아치는 밤.

폭우 때문에 경찰도 올 수 없고, 곤돌라도 띄울 수 없는 한 저택에서의 밀실 살인 사건이다.

게다가 저택은 고아들이 그들을 돌보아주던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흑사병이 창궐한 이후 버려지고 저택에 가둬져서 죽은 사건을 극 전반에 펼쳐놓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의도대로 첫 번째로 작품 속 아름다운 베니스에 매료되고 만다.

이집트, 이스탄불, 메소포타미아 등 여러 작품이 등장한 것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인생과도 절묘히 연결된다. 특히 오늘의 작품 속 유명 추리 소설 작가인 '아리아드네 올리버'는 작가의 분신이기도 하다.

베니스를 미신을 믿는 도시로 묘사했지만 베니스만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고 영화에 등장하고 물의 도시를 이용한 살인 사건은 영리하기마저 하다.


주인공인 포와르 탐정과 등장인물인 영매사 레이놀즈(전직 간호사), 레슬리 페리에 박사(의사)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쟁을 겪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상처와 병이 그들 정신세계에 깔려 있다. 더군다나 사건의 중심이 되는 오페라 가수인 '로웨나 드웨이크' 와도 연결되어 있다. 가면무도회의 도시답게 영매사는 가면을 쓰고 등장하며 모두가 아픔과 정체를 숨긴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과도 매칭된다. 

심령술사, 유령 등 오컬트 요소가 있어서 공포 추리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포와르 탐정의 추리 실력은 절대 녹슬지 않았다. 

환각을 일으키는 물질을 섭취한 후 실제 유령을 보기도 하지만 특유의 집중력과 자신감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모습에서 전율마저 느껴진다.


또 하나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이 소유욕으로 변질될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성장하여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자식에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나 또한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을 보며 추억에 잠기고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다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인 한 두 번이 아니다.

최근 일 년은 아이들이 커간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했다.

하지만 영원히 나의 아기로만 머물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독립하려 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격려할 수 있어야 함을 알고 있다.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닐까.

나이 40 먹은 자녀가 아직도 부모에게만 기대고 부모를 찾는다면 진정한 성장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작품 속에서 알리시아는 엄마의 그릇된 사랑으로 죽어가고 그 죄를 숨기기 위해 엄마는 추악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오로지 자신의 죄만을 덮기 위해 범죄를 눈감아준 주치의를 협박살인교사하고 영매 또한 죽이고 만다. 핼러윈의 공포와 저택의 사연을 빌미로 완벽 범죄를 꿈꾸지만 우리의 포와르 탐정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지.


작품을 보면 전체적으로 포와르 탐정이 인간적이며 정이 많음이 곳곳에 드러난다.

유명세를 피하고 은퇴를 선언하며 베니스에 왔지만 도리어 베니스에서 새로운 탐정 인생을 시작한다.

결국 인간에 대한 사랑은 그를 인간 본연의 심리에 몰두하게 만든다.


극 중 페리에 박사는 포아르에게 말한다.

당신이나 나나 죽음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고.

그는 극심한 전쟁후유증을 앓고 있다.

죽음은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 불리는 탐정과 의사.

하지만 그들이 있기에 억울한 죽음은 해결되고 죽음의 순간에도 다시 생은 시작된다.


영매사의 조수였던 이복 남매를 '로웨나'의 돈으로 미국 미주리로 보내주고 그 누구도 경찰에 신고당하거나 하지 않는다. 페리에 박사의 조숙하지만 어린 아들 또한 다행히 집사인 올가 세미노프에게 입양되는 등 인간에 대한 따스한 시선 또한 잃지 않는다.


영화를 봐야만이 더 촘촘한 작품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 그녀의 생애도 알아야 그녀의 추리 소설의 진가를 더 느낄 수 있다.

캐네스 브래너 감독이 감독이자 제작, 주연을 맡았는데 그의 애거서 크리스티 영화가 계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포와르 탐정은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 속에서 50번은 더 나오지 않았던가. 영화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초가을의 서늘함과 닮은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매력적인 도시에서의 공포를 원하신다면 지금 예매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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