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버거킹엔 알바킹이 있다.

by 마음돌봄

대학생 때 친구들과 가장 많이 간 곳은 패스트푸드점이다.

학교 안엔 롯데리아가 있었고, 우린 늘 데리버거 세트를 먹으며 콜라를 열댓 번은 리필했었다.

맥도널드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동아리 동기를 만나러 갈 때는 맥도널드 버거세트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러 가거나, 쇼핑을 갈 때 갔던 곳은 항상 '버거킹'이었다.

가끔씩 KFC의 바삭한 치킨버거를 먹기도 있지만 희한하게 항상 버거킹으로 향했다.

뭔가 숯불에 구워진 것 같은 패티의 맛, 양배추의 식감. 얼음 가득 콜라의 시원함.

사실 가장 좋았던 건 그곳의 인테리어였다.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

느리지만 위트 있는 장면 전환과 대사가.

이런 사람이 배우란다 느낌의 전형적인 미남미녀들, 단순이 예쁘다가 아닌 분위기 있는 사람들.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에바 가드너, 비비안 리, 잉그리드 버그만.

그녀들의 사진과 흑백 배경의 1930년대 뉴욕의 모습까지 썩 마음에 들었다.

동기들과 신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떠들던 곳.

좌석이 많아 더 여유롭고, 마음까지 덩달아 여유로웠던 청춘의 집합소였다.


이랬던 곳이 아이들이 어릴 때는 좀처럼 가지 않는 장소가 되었다.

지금이야 아이들도 컸으니 함께 가서 먹기도 하고, 이미 아이들 스스로도 잘 들르는 장소가 되었지만.

휴일의 점심은 요리를 한다기보단 뭔가 가볍게 먹고 싶을 때가 많다.

늦은 아침을 먹고 냉장고 정리까지 끝내니 벌써 약속한 도서관에 갈 시간이다.

아이들과 부랴부랴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고 잠시 있다 나오니 오후 3시, 어중간한 시간이 되었다.

이럴 땐 뭐다? 패스트푸드로 고기와 채소의 완벽한 콜라보를 완성한다.

식당은 브레이크 타임이니 가도 어차피 소용없다.


동네는 미국 마을 같은 곳이라(다른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뭔가 이 마을 안에서 우리만 사는 느낌이랄까.

여하튼 상점이랄 것도 그리 많지 않은데, 건물주 한 분이 과감하게 버거킹을 일층에 오픈한 후, 메가커피에 이어 동네 핫플이 되었다.


오랜만에 가까이서 만난 버거킹은 역시나 빨강과 주황의 콜라보로 활기차다.

동네 젊은 대학생들이 알바를 하는 곳.

중고등학생들이 간식을 사 먼 곳.

부모와 아이들이 같이 가볍게 먹을 수 있는 곳으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아들들과 함께 키오스크 앞에 섰다.

치킨 마니아인 둘째는 롱치킨버거

큰애는 흔한 버거는 먹는 게 아니라며 치킨킹 버거세트를, 난 무난하게 와퍼 주니어 세트를 콜라 라지로 바꾸고 주문을 했다.


앉아있는 테이블로 잠시 후 한 직원 분이 달려왔다.



저, 이 금액보다 더 저렴하게 드실 수 있는데 계산 취소하고 도와드릴까요?



네? 이게 무슨 말이지.

말인즉슨 행사를 선택하면 19600원이 아닌 17400원으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말씀.

아까 대충 훑어봤었는데 주문란에 그런 부분은 없던 것 같은데.

직원 분을 따라가서 주문을 다시 해보니, '와퍼 주니어 + 롱치킨버거'가 메뉴란에 떡하니 있었고

그분 말대로 우리는 더 저렴한 금액으로 다시 주문을 할 수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라 놀라기도 했고, 고맙기도 했다.

아이들과 우와 우와를 연발하며 야무지게 먹고 나오면서 일부러 그분께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워요'라고 꾸벅 인사를 하고 나왔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일이란 건 저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작은 일, 사소한 일 같아도 저렇게 최선을 다해서 궁리하고 고객에게 알려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내 돈도 아니니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친절하게 와서 설명해 주고 도와주는 게 어디 그리 쉽던가.

그냥 내 시간이나 보내며 일할 수도 있었겠지만 타인을 위한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그냥 피곤해서, 혹은 귀찮아서 넘기는 일이 얼마나 많던가.


아이들도 정말 대단하다고, 메뉴나 행사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니까

저렇게 할 수 있는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나도 저렇게 일하면 참 좋겠다.

작은 일도 성심을 다해서 일하고 하찮게 생각하지 않는 마음을 갖고 싶다.

저렇게 일하는 사람이라며 어떤 일도 정말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성과를 내서가 아니라 마음을 다해서 일을 하니까 진심이 통할 것 같다. 아이들에게 이 일이 작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느 순간 그들이 '일'이란걸 하게 될 때 오늘을 떠올릴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우리가 받은 이 친절이 돌고 돌 수 있도록.


오늘의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몇 배나 더 맛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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