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때 친구 A양.
나의 모든 흑역사를 알고 있는 레알 찐 친구다.
오랜만의 저녁 약속을 잡고 만난 우리의 선택은 이자카야.
막상 가보니 테이블이 좁고 웨이팅까지 해야 한다.
우리가 기다리면서 먹을쏘냐.
당장 플랜 B로 찾아놓은 식당으로 향한다.
역시 피자에 스파게티에 필라프에 기름칠 좀 해줘야지.
주택을 개조한 식당이라 뭔가 독특하고 구조도 좋다.
게다가 좋아하는 1950년대 할리우드 배우들 사진까지.
사람도 많이 없고 좋구먼.
식사를 마친 후 근처 카페로 갔지만 웬걸 9시 마감이란다.
벌써? 스타벅슨데 9시 마감이라고?
이렇게 헤어지긴 아쉬웠다.
소개팅하고 밥 먹고 차마신것도 아니고 이건 아니지.
우리 노래방 갈까?
노래방간지가 거의 이천 년은 된 기분이었다.
노래방은 모르겠고 코인노래방을 가기로 했다.
코인 노래방, 일명 코노는 학생들이 가는 곳 아닌가요 싶었지만
막상 들어간 코노는 정말 깔끔하고 트렌디했으며 환하고 넓은데 프라이빗하기까지 했다.
일회용 마이크 덮개까지 있는 데다가 더 히트인 것은 노래를 부르면 그 노래 뮤직비디오가 배경에 깔린다는
것이다.
2000년대 초반, 친구와 동네 노래방과 대학교 앞 오락실 노래방까지 휩쓸고 다녔었는데 그때마다 생각이 든 건 왜 노래 배경은 저런 것인가.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배경으로 하면 안 되나 하고 생각했었는데 이것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니 역시 세상은 발전하고 있었고 난 시대를 앞서간 인간이었다.
게다가 60분에 6000원.
30분에 3000원.
15분 서비스까지.
정말 싸고 합리적인 가격에 감동하고 뮤직비디오 배경에 2차 감동을 한 상태였다.
노래방은 오랜만인지라 일단 목을 풀어본다.
최신곡 따윈 모른다.
노래의 방향은 우리들의 리즈(?) 시절로 향한다.
가수 '유미'의 '사랑은 언제나 목마르다'를 부르며 정우성과 전지현 배우의 뮤직비디오를 감상한다.
'버즈'의 노래를 부르며 메인보컬의 꽃미모도 구경한다.
우리들의 1번 곡이었던 '박정현, 빅마마, 거미, 백지영가수' 노래까지 하다가 그들의 가창력에 감탄하며 취소 버튼을 누른다.
의외로 '하동균'의 '그녀를 사랑해 줘요'를 완창 해버린 나 자신에게 감탄도 해본다.
'태사자'의 '도'를 부르며 랩도 해보고 그 시절 랩이라 참 다행스럽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음번에 만났을 땐 밥 먹고 노래방부터 가기로 가닥을 잡았다.
20대의 뜨거운 무언가가 솟아오른 것은 아니었지만 노래를 불러보니 조금은 기운이 났다.
노래방을 나와 함께 걸으면서 육아에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가만히 조언도 전하고 책도 건네주었다.
우리들의 추억도 다시 되살아났다.
아이들만 챙기고 일만 하면서 살아내느라 돌아보지 않았던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족끼리 모이거나 만나기는 했지만 우리만의 시간이 부족했었다.
나의 힘든 이야기도 전하면서 공감을 받으니 고마웠다.
사심 없이 이야기를 들어준 친구.
입덧으로 힘들어할 때 가만히 챙겨주던 그 친구.
술 먹고 길바닥에 전을 부쳤을 때 작은 어깨를 내어주던 친구.
첫사랑에 힘들어하며 울고불고 진상을 떨었을 때도 곁에 있어주던 친구.
나보다 키는 한참 작지만 이상에 젖어있을 땐 언니처럼 현실을 일깨워주던 그녀.
자주 보자, 이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