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제자리
"어디 한 번 시작해 볼까?"
서울 대학생들은 22,3살이면 본인 용돈은 스스로 번다는 게 충격이었던 지방 대학생이 구직란을 뒤적이기 시작했다.
사실 더 큰 이유는 이렇게 기특한 까닭이라긴 보단 경제적 독립에 관한 갈망 혹은 집안 사정에 따른 타의적인 결과의 부산물이었다.
지역대학교와 우리 동네 사이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 영어 교사를 모집하고 있었다.
친한 친구가 사는 동네이기도 하고 종종 학교에서 친구와 걸어 다니는 곳이라 왠지 친근했다.
게다가 애정하는 지역 도서관도 근처에 있었고 딱 알맞은 일터였다.
방과 후 업체 미팅을 간 첫날, 웬걸 대표님의 모습은 일수 가방을 옆에 끼고 금빛 찬란한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장착한 명품남(?)이었는데 교육업계 종사자 맞으시죠란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Don't judge book by its cover."
그래, 내 일자리만 있으면 되지.
드디어 수업을 하게 된 첫날은 뭔가 떨리면서도 착잡한 마음이었다. 4명의 초등학생 아이들이 초롱초롱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교수법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업을 한 데다가 수업하는 교실의 담임 선생님이 들락날락하시기도 했다.
이 와중에 초등학교 여선생님들은 어찌나 단아하고 예쁘던지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처럼 교실 푯말에 'OO반' 이런 식으로 방과 후 교실이 안내되는 상황도 아니었던 초창기이다 보니 교실 상황에 따라 아이들을 데리고 이 교실 저 교실 빈 교실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상황이었다.
어떤 날은 빈 교실이 없어서 운동장에서 수업한 날도 있었다.
멀티미디어 도구도 없이 오로지 쌩으로 수업하던 시절이라
학생들에겐 미안하고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지는 경험을 하는 날들이 지속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시립도서관 마감 시간 전까지 책을 읽었다.
'39세 100억 부자', '35세에 부동산 부자되기', '나는 경매로 30대에 부자가 되었다' 류의 책들이 유행했는데, 나중엔 '피터 드러거'의 책이나 '워런 버핏'의 책을 읽으며 원론에 집중하게 되는 책을 읽게 되었다.
최대 대출 권수인 5권을 빌려 집까지 걸어가는 길.
40분 정도를 걸으며 버스비를 아꼈다는 뿌듯함, 책을 읽고 풍요로워진 마음이 동반되어 행복했던 퇴근길.
책을 통해 긍정적인 마음을 장착하지 않았다면 이미 폭발했을 것 같은 20대 초반.
독서 노트에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필사하고 정리하면서 마음을 다잡기도 했다.
멋지다고 생각하는 장소에서 일은 하고 싶고, 현실을 받쳐주지 않을 때 책이 도피처가 되기도 했고, 희망주입기가 되기도 했다. 방과 후 교사는 아직 한참 더 일하고 많이 벌고 싶은 나에게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
자기 자리는 자신이 만든다고 어느 곳에서든 비전과 성실함을 가지고 일하면 된다라는 걸 지금은 알지만 그때는 몰랐던 초보 강사였다.
일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에 복학을 했고, 미래에 대한 고민은 여전했다.
돌고 돌아 제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