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어학원 입성기
왓?? 언니는 180이라고?
학교로 돌아와 남은 계절 학기를 마치고 이제 학원을 오픈한 젊은 원장님 밑에서 영어 강사로써 일을 시작했다. 총 3명이었는데 내 교실 이름은 'Oxford'.
영국병은 어딜 가지 않으니 옥스퍼드 교실 한 칸 차지하고 아이들과 연일 즐거운 수업을 이어갔다.
플래시카드 쫙 깔아놓고 파닉스 카드 빨리 집기. 음가 불러주면 블록으로 단어 맞추는 팀플레이 등등 각종 영어 게임을 시전 하며 깔깔거렸다.
햇병아리 강사 첫 월급은 120만 원.
이만하면 일도 재미있고, 캐나다 교포 선생님과도 쫀쫀한 유대를 쌓으며 만족해하던 어느 날이었다.
대학 선배 언니와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는데 어학원에서 일하며 매달 평균 180의 월급을 받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 시작할 땐 나와 비슷했는데 벌써 180이라고? 내년에도 월급 120이 확정이라 연봉 오를 일은 만무하고 친하게 지냈던 교포 선생님은 향수병으로 한국을 떠난 지 3개월은 되던 때였다. 새로 온 부원장님과는 결이 안 맞아 나름 마음고생을 하고 있었던 때라 이직의 꿈이 부풀어 올랐다.
선배 언니가 일하는 곳은 5층짜리 건물의 대형 어학원. 지금도 존재하지만 당시엔 더 유명했던 'OOO어학원'이었다. 수십 명의 강사들, 운전기사 분들과 영어 유치원까지 있는 곳이었다.
외국인 강사들도 베리베리 많이 있고, 교재나 시스템도 투머치하게 체계적이라 여겨졌던 그곳.
말 그대로 디스 이즈 대형 어학원. 제대로 된 조직 생활의 시작이었다.
영어 유치원 졸업반인 킨더 졸업반과 일반반 학생들로 크게 구분되는 시스템인데 종국엔 특목고반과 일반 중학반으로 분류가 된다. 특목고반은 실제로 토플 교재나 단어까지 쭉쭉할 수 있는 아이들인데 걔 중엔 즐기면서 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틱이 올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코스북과 스토리북 기반으로 수업을 하고 1교시는 한국인 선생님. 2교시는 외국인 선생님과의 수업이다. 첫 시간부터 학년이 어리든 어리지 않든 기선 제압은 필수였다. 평균 12명 정도의 학생들과 수업을 했어야 했으니 말이다. 방학 특강이 시작하면 오전 9시에서 12까지 4교시 내리 특강을 진행하고 오후엔 기존 학생들 수업을 다 하고 나면 밤 10시. 20대라 가능한 스케줄이었다.
특목고반은 시간당 18000원, 중학반은 16000원, 일반 초등반은 12000원.
수기로 본인의 수업 시수와 각 클래스당 수업비를 곱한다.
ex) 18000x20x4 = 576000원
16000x12x4 = 768000원
12000x20x4 = 960000원
총 2,304,000원
이전 학원에 비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동료 선생님들과 우리는 시간당 고급 알바라며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끈끈한 그녀들과의 유대는 일을 하는 또 하나의 기쁨이었다.
영어유치원 귀염둥이들을 가르치면서 '노부영 시리즈'에 푹 빠졌었다.
"제시 베어~~ 왓 윌 유 웨어? 왓 윌 유 웨어 인 더 모닝~~?
노래를 불러 젖히며 읽은 영어그림책들. 앤서니 브라운, 에릭 칼 등 작가들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팀장님이 꽤 꼼꼼한 분이라 일 년 치 커리큘럼을 짜고 정확한 회의와 피드백을 요하는 분이었는데 유머와 쪼임의 밀당을 아는 분이었다. 강사 관리의 달인을 만난 것이다.
어느 날, 팀장님의 개인적인 미팅 요청이 있었고 그날부터 빈 강의실에 나 홀로 수업이 계속되었다.
"샐리티처야, 위에서 너를 자를까 말까 고민한대."
파든? 뭐라고요? 오 마이 갓~!
평범한 사람의 인생에도 순간적인 위기 극복 능력은 있다.
좀처럼 격동의 마인드가 없는 인간 군상이지만 밥줄이 달렸으니 변화할 수밖에.
눈물도 나고 미리 말해준 팀장이 고맙기도 하고, 나 자신이 싫기도 했지만 오기 발동!
빈 강의실에서 몇 날 며칠을 수업 시연에 매달렸고, 결국 노력이 가상 했던 건지 실력이 인정을 받은 건지 알 순 없지만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인서울 대학 출신 강사냐 아니냐에 따라 시급(월급이라 하지만 우린 시급이라 불렀다.)이 약간 달랐지만 20대 동료 강사들과의 생활이나 유대는 꽤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친한 멤버가 5명이었는데, 공강 시간에 서로 외운 대통령 연설문 테스트를 해주기도 하고 플래시 카드를 코팅기에 구우면서 역시 우리는 단순 노동이 맞다며 나중에 밤이나 까자고 웃기도 했다.
영어의 맛, 나름 직장의 맛을 느꼈던 학원 강사 생활이었다.
p.s : 왜 영어 이름을 'Sally'라고 했을까요?
이미 전 직장에서 쓰면서 애정했던 'Ellie'라는 이름을 쓰고 있는 강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나의 영국병은 14살 때 만난 'Full House'에서 시작되었는데
여주인공 이름이 'Ellie'였다는 사실.
엘리티처가 이미 있다는 사실에 당황했던지 엘리? 엘리? 하다가 라임을 맞춰
샐리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다.
-사진 출처 : 캔바, 본인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