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프로도전러, 그 잡채.

나의 업무일지

by 마음돌봄


다 해보자. 뭐가 될지 뭘 할 수 있는지 모르니 다 도전해보자. 아직 뭘 할지 모르니





그 나이에 할 수 있는 건 다 경험해보자 싶었다. 어차피 정해진 건 없으니. 시간이 지나버리면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나이 제한에 걸리는 것들도 있고, 시간 여유가 없어서 할 수 없는 일들도 있다. 학생일 땐 너그러울 수 있는 일이 사회인이 되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지랄 총량의 법칙' 이 있어서 나중에라도 꼭 그 '지랄'이 나올 모양이라면 지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수업도 들쑥날쑥 흥미가 없고 동아리 활동만 열심히 하던 중 이 이상 방황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겠길래 할 수 있는 건 다 발을 담가보기로 했다.






1. 영국문화원 서포터스

2. PSAT 공직 적성평가

3. 교내 영어캠프

4. TESOL

5. 승무원 도전






영국병(?)이 있던 터라 도전한 영국문화원 서포터스는 무조건 지원했다. 나름 학교 대표라는데 영국문화원에 방문해서 타학교 대학생들과 오티 한 것 외에는 전혀 활동이 기억에 남지 않는다. 유학 계획이 있는 여대생의 이야기를 듣고 우아하고 말한 기억밖에는.


공직적성평가는 22살 그 해 처음 예비로 실시되었는데 언어논리는 국어를 좋아하니 그럭저럭 통과. 자료해석은 어찌 해석하는지 모르지만 경제 과목 배운 가람으로 모면하고 상황판단 영역은.. 음.. 글쎄 인생 판단이 더 안 되는 관계로 대략적으로 넘겨본다. 어디에 쓰일지 모르겠지만 1회 시행 전 예비 시행이라니 일단 고고 해보는 거다.


교내 영어캠프는 정말 필사적으로 참여했다. 이유는 뭐라도 이력을 한 줄 남기기 위해서. 그 때나 지금이나 정말 프로필 채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감자탕을 한국인만큼이나 잘 드시던 외국인 교수님께 breast, heart, chest의 차이가 뭐냐고 무식하게 들이대며 물어봤던 기억밖엔 없다. 정말 친절히 성의껏 답변해주시던 교수님 감사합니다. 수염 덥수룩한 영작문 교수님께 제출한 리포트는 punctuation의 부재로 된통 혼났던 기억이 남아있다. 덕분에 지금 학생들에게도 꼭 강조하는 부분이 되었지만.


테솔 과정을 듣는 동안은 정말이지 행복했다. 주말반이었지만 드디어 한양(?)에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주중엔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토요일 새벽이면 기차나 버스를 타고 안국동 코리아 타임스 건물에 가서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수업을 듣고 팀을 짜서 실습을 한다. 당시엔 23살 가장 막내라 많이들 챙겨주셨는데 골드 미스 학교 선생님부터 취미로 공부하는 청담동 사모님 언니까지 있어서 다양한 인생 경험은 덤이었다. 저녁에 수업이 끝나면 다 같이 인사동에 가서 차를 마시곤 했는데 지하철 노선과 현재 완료 용법을 헷갈려하던 내게 웃으며 친절히 알려주던 긴 머리 언니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대망의 도전은 항공사 승무원. 다들 졸업 전에 입사하겠다며 야심 차게 임했지만, 웃는 연습이 어찌나 힘들던지. 수업 후 입술 경련 때문에 우는 것인지 웃는 것인지 모를 팀플레이가 펼쳐지곤 했다. 미모로 승부하기엔 너무나 책임감 있고 어른스러운 얼굴인지라 그야말로 다른 장점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진작 자세도 더 바르게 하고 영어도 더 많이 씨부려볼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현장에서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수업 덕분에 메이크업, 스피치, 퍼스널 컬러, 인터뷰까지 나름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족이 외항사 승무원이 되는 걸 반대한다면 어떻게 할 건가요?"

"사실 오늘도 아빠 몰래 면접 보러 왔습니다.^^"





오 마이 갓. 이건 정말 이 면접을 파투 내겠다는 무식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아랍 에미레이트 항공사 면접 때 이렇게 대답하고 만 것이다. 당시 한창 떠오르는 나라였던 아랍 에미레이트에 대해 긍정적 이미지를 말하고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안될 징조였는지 내 혀는 어긋난 말을 던지고 말았다.


몇 차례 서울로 면접을 보러 다니다가 끝내는 포기하고 말았다. 더 도전했다면 20대의 인생은 조금 더 달라졌을까.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듯 했다면 방향은 조금 다른 곳을 향했을지도 모른다.


항상 물 같은 사람이라 생각했었다.

나 스스로를.

액체가 담는 그릇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것처럼 어떤 환경에 있느냐에 따라 빚어지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씩 더 도전하지 않았던 20대의 내가 어리석고 안타깝고 바보 같다.


요즘 유행하는 회귀 물의 드라마처럼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말해주고 싶다.


"참 잘했어. 잘 시작했어. 그런데 한 발짝만 더 나가보지 그랬어. 그래도 아직 괜찮은 나이인데.

더 헤매고 도전해도 이쁠 때인데"


오늘이 가장 젊은 날.

도전은 계속된다.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무수한 'Dot'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선'을 이루길 기대하면서.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영화마을'에 놀러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