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에 맞춰 들어간 대학 생활은 생각보다 무료했다. 자유의 맛은 달콤했으나 목표 없이 부유하다 보니 출석은 들쑥날쑥 이었다. 뭐 재미있는 일 없나 동네를 어슬렁거리던 어느 날, 눈에 띈 건 동네 비디오테이프와 만화책 대여점인 '영화마을'에서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한다는 광고. '씨네 21'부터 '스크린'까지 영화 잡지란 잡지는 다 보던 나에게 최적의 알바가 아닌가. 게다가 동국대 영화과를 가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 말했다가 고3 담임선생님 뒷목을 잡게 한 전력이 있는 자칭 영화인(?)이었던 나에겐 꽤 끌리는 일자리였다.
"그래, 영화랑 책이랑 실컷 보고 인생의 의미나 찾아보자."
(그런데 이게 인과 관계가 있는 말인가.)
면접을 위해 만난 사장님은 고급 슈트에 검은색 롱코트를 입은, 동네 비디오 가게 사장님 이라기 보단 대기업 상무님 분위기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삼성맨 출신으로 유럽에서도 해외 근무를 하고 온 분이셨다. 가수 조용필을 닮은 외모에 한참 어린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존댓말을 쓰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동네에 1호점과 2호점 두 개를 운영하셨는데 나도 가끔 양쪽 매장을 왔다 갔다 하며 일하기도 했다.
학교 수업이 끝난 오후부터 마감 두 시간 전인 밤 11시까지 업무 시간이었다. 낮시간에 같이 일하던 언니는 일러스트를 공부하던 대학원생이었는데 패션센스와 함께 유머 감각까지 갖춘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나름 죽이 잘 맞아서 낄낄대며 재미있게 일을 했다. 거기다 단골로 오는 손님들이 있으니 그 재미도 배가 됐다.
오후 1시, 매일 오는 채소 트럭 사장님이 '도시 정벌'이나 '원피스'시리즈를 빌리러 온다. 생활 근육이 있는 매너남으로 언제나 친절하게 인사를 해주면서 들어오곤 했다. 그분이 가고 나면 성인 영화 마니아였던 젊은 청년이 보통 이틀에 한 번은 온다. 25살,역시나 혈기 왕성한 나이다.
오후 3시~4시 사이, 신간이 배달되는 시간. 컴퓨터에 새 책들을 입력해서 바코드 작업을 한다. 영역별로 들어온 신간들을 잘 입력하여 A4 용지 한 장에 깨끗이 출력해 게시대에 걸어놓는다. 밤에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오는 단골 고등학생 손님들이 신간 만화를 찾겠지.
저녁 7시 30분, 근처 학원에서 일하시는 청순한 외모의 학원 선생님이 오는 시간. 저녁에 같이 일하는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관심 있어하는 분이다. 짜식, 이런 타입 좋아하는구나. 가끔 놀라운 풍경이 연출되기도 하는데, 같이 일하는 언니에게 고백하는 손님들이 있다는 거다. 물론 당장 어떻게 되지는 않았지만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선덕거렸는데, 이거야말로 '사랑이 꽃피는 영화마을'이었다.
밤 10시, 드디어 근처 고등학교 남학생들이 신간 만화가 입고되었는지 보러 온다. 예의도 어찌나 발렀는지 그 친구들도 벌써 30대 후반의 직장인이나 애아빠겠지.
중간중간 재미있는 소설이나 만화책을 보는 맛도 일하는 재미로 빼놓을 수가 없다. 내 평생 볼 만화책은 이때 다 본 것 같다. 당시엔 OTT나 유튜브도 없던 시절로 이메일도 대학 들어가서 처음 만들었었다. 기껏해야 부모님들이 걱정하는 건 TV나 비디오, 만화였을 뿐. 지금의 관점에선 참 그때가 좋았지 싶다. 지금 부모가 된 나는 정말 아이들의 온라인 생활은 걷잡을 수 없으니.
2호점(버스정류장 앞이라 규모도 더 컸다)에서 일하던 동갑인 친구가 있었는데 근로장학생에 아르바이트로 본인 용돈까지 해결하는 똑순이었다. 순한 외모에 조용한 말씨를 가졌는데 억척스럽다기 보단 단단해 보였다.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해결하는 대학생이라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친구였다. 커다란 책가방을 메고 다니고 옷 3벌을 번갈아 입으며 학교 생활을 했는데 그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화려한 여대생들 사이에서 더 돋보였다.
2002년 여름, 외국어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당시 공동 개최된 한. 일 월드컵에서 우리 과 친구들 모두 통역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 당시엔 우리나라에서 개최된 월드컵으로 인해 온 나라가 들썩거렸는데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과도 하나가 될 수 있단 걸 온몸으로 느꼈던 때였다. 특히 스페인과의 경기가 있었던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선 연장전에다가 승부차기로 완벽한 승리를 하던 때여서 더 나라가 들썩거렸었다. 현장감을 느꼈던 터라 그 느낌은 정말 말로 형언할 수가 없다. 우리나라 선수들의 5번의 승부차기 성공. 거기에다 이운재 골키퍼가 스페인의 공을 막아내기까지 한 완벽한 승리. 저녁에 아르바이트생으로 돌아와서도 그 열기는 계속되었고, 당시에 축구 경기가 있던 날이면 손님까지 뚝 끊겨 그야말로 도심 속의 고요함을 맛보기도 했다. 게다가 동시에 주변 아파트에서 동시에 들리는 함성 소리는 덤이었다.
일하면서 조금은 힘들었던 부분은 연체된 손님들에게 비디오테이프나 책을 가지러 가는 일이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당시엔 한 두 달씩 연체된 분들도 있기 때문에 꼭 찾으러 직접 방문했어야 했다. 전산에선 연체금이 몇만 원씩 쌓였지만 책이나 비디오테이프를 받는 순간엔 그저 감사하단 말밖엔 할 순 없었다. 가끔씩 연체금이 쌓인 손님들이 사장님 앞에서 저마다의 이유를 대며 왜 반납할 수 없었는가를 이야기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방황하던 대학 생활에서 유일하게 재미있었던 때였다. 이후 매력쟁이 언니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서울 잡지사에 취직했고, 누구보다 빛나던 근로장학생 친구는 전공을 살려 공단에 취업해서 직장인이 되었다. 그럼 나는? 누군가는 승리를 위해 공을 힘껏 차고 또 누군가는 전공을 살려 취업하는데 나는?
N년째 헤매는 중이었다. 부유하는 소금쟁이처럼 둥둥 떠다니며 확실한 나만의 것을 찾기 위해 계속 헤매는 나의 대학 생활. 뜨거운 여름이 지난 후, '영화 마을' 아르바이트는 잠시 멈추고 긴 겨울 속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것 말고는 딱히 흥미로운게 없던 시절, 또 다른 경험이나 하기로 했다. 일단 생각나는대로 끌리는대로 다 해보자 싶었다. 다시 출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