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쇼'먹고 헤드뱅뱅

by 마음돌봄

좀체 나갈 생각을 안 한다.

제 집인 양 버티고 있다.

더 움직이고 일부러 반신욕을 하며 땀을 빼봐도 제자리다.

감기라는 녀석.

내 평생 근육은 쑤시고 눈은 피로해도 감기에 걸린 적은 손에 꼽는다.

의외로 건강하다 생각했는데.

올해 감기는 누구라도 인정할 만큼 독한 녀석이다.

좀 나아지는 것 같아 밖에 나갔다 오면 그날 저녁은 여지없이 열이 오른다.

주말 내내 몸을 사리며 집에 있어본다.

아들 녀석들 겨울 신발이 필요한지라 남편에게 쇼핑 다녀오라며 내보냈다.

찬바람을 쐬다간 더 심해질 수 있으니 사실 움직여야만 하는 몸뚱이를 경건히 집에 모셔본다.

남자들만의 신발 쇼핑은 의외로 성공이다.

세일 시즌이기도 하고 주차부터 뭔가 착착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쇼핑을 너무나 싫어하는 아들들이 만족할 정도니 이건 뭐 대성공이라 봐도 무방하다.


뜨끈한 물을 마셔봐도 차를 마셔봐도 칼칼한 목이 좋아지질 않는다.

뭘 더 마셔볼까 고민하던 내게 눈에 띈 건 며칠 전 남편이 사 온 와인 한 병이다.

겨울엔 커피숍에 가면 커피보단 뱅쇼를 시켜 먹곤 하는데, 집에서도 해 먹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별거 있겠어. 팔팔 끓이면 되겠지, 뭐.

재료도 정확히 모르겠지만 레드 와인 반 병을 냄비에 무작정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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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몬도 없고, 뱅쇼 먹을 때 쌍화탕 속 노른자처럼 동동 떠있는 나뭇가지 같은 것은 없지만 일단 막 끓였다.

달달한 맛을 좋아하는지라 재료를 찾아보니 어제 먹고 남은 레몬차가 눈에 띈다.

뚜껑을 열어보니 곱게 썰어진 레몬들이 살포시 누웠다.

끓고 있는 와인 속에 레몬 조각들을 다 투하시킨다.

역시나 부족한 단 맛.

마침 집에 홍삼 꿀이 있다.

그래, 몸에 좋으려고 먹는 거니 홍삼 꿀이나 옴팡지게 넣어보자.

선물 받은 크리스털 잔에 넣어 먹어볼까 하다가 잔을 바꿨다.

잔이 바사삭 깨질 것 같은 감이 왔기 때문이다.

맥주 살 때마다 옵션처럼 얻은 두툼한 맥주잔에 가득 따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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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뱅쇼라기보다는 뭔가 한약 같은 비주얼이지만 따땃하게 한 사발 먹고 나니 머리는 댕댕거리고 몸이 따뜻해진다. 무엇이든 어떠하리오. 이 감기 녀석만 얼른 내보낼 수 있다면 어설픈 뱅쇼라도 날마다 끓여드실 요량이다.


쇼핑을 다녀온 남편은 빈 와인 병을 보며 부인이 다 먹은 거냐며 깜짝 놀란다.

평소 주량을 아는 남편 입장에선 약간은 놀랠 일이긴 하다.

아직도 맥주도 잘 못 마시고, 이슬 톡톡이나 요로호이 한 캔이 주량의 전부지만

뱅쇼는 한 사발 먹는답니다.

어서 또 와인 한 병 대령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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