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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Jan 14. 2024

<설거지를 하기 싫은 건에 관하여>

식기세척기를 살 때만 해도 신세계였다.

세탁기 효과음과 같은 음이 들리면 그것도 재미있었다.

그러다가 물맛을 느끼고 싶어서 굳이 손설거지를 하는 날도 있었다.

시간 절약엔 식세기, 물맛과 함께 유튜브를 보며 설거지하는 기쁨을 느끼고 싶을 땐 손 설거지.

장갑도 끼지 않고, 뜨거운 물에 불린 그릇을 뽀독뽀독 씻어내기도 했다.


별다른 요리를 하지 않아도 쌓이는 그릇들을 보면 조리를 하면서 바로바로 쓰레기를 버리는 나는 그릇들도 그렇게 씻어댔는데 종국엔 나 몰라라 하고 그릇들을 쌓아두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다가 식기세척기에 차곡차곡 넣었는데, 어떤 날은 그마저도 심드렁하고 힘들었다.

이렇게 매번 나오는 그릇들.

식기세척기에 들어가도 손상 없을 수저세트.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 먹으며 꼭 종이 상자를 씻고 말려서 버리는데 바로 씻지 않으면 싱크대에 처박혀있다.

얼른 헹궈야 하는데. 오늘은 정말 하기 싫다. 







음식 준비보다 설거지를 더 좋아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따뜻한 물 때문일까.

재미있는 영상을 보며 멍하게 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럴까.


집안일에 대해 여러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아무리 한다고 해도 많은 퍼센티지의 양이 내 몫임을 부인할 수 없다.

절대 양말을 아무 곳에나 벗어놓지 말고 정리하게 하고, 본인이 혼자 먹은 설거지는 바로 치우기.

재활용쓰레기 버리기 등 산재해 있는 모든 사소한 항목들을 잘 지키는 가족들이지만 이것은 나의 계속된 말로 인한 결과이다.

인생의 8할을 집안일을 하며 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면 그 말의 데시벨은 더욱더 높아진다.

살림살이를 야무지게 잘하지 못하는 점. 정리를 잘하지 못하는 점.

어쩌면 이건 연습을 해도 절대 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 이런 느낌이 드는데 일조한 게 틀림없다. 일단은 버리는 것. 짝을 못 찾은 반찬그릇. 오래된 플라스틱 통.

그리고 6개월 이상 찾지 않는 물건 등을 과감하게 버리는 요즘이다.

핸드폰 문자와 카톡만 쌓여도 마음까지 무거워지는 느낌이 드는데 그런 항목들을 과감하게 버리고 나면 조금이라도 가벼워지는 느낌이 든다. 








이제는 더 이상 보지 않는 책, 충동적으로 구매한 비슷한 류의 서적들을 중고 서점이나 재활용 쓰레기장으로 보내야 할 시점이다. 그 작업이 끝나고 나면 드레스룸에 택배 회사 물류 창고처럼 쌓여있는 의류들마저 정리를 해야 한다. 노트북을 정리해서 휴지통에 자꾸 버리고 비운다. 메일함의 메일들을 삭제한다.

어쩌면 삶이란 버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자꾸 비워내서 가벼워져 봐야 어깨에 내려앉은 한 마리 곰이 사라질 것 같다. 

비우고 채우기 위한 게 아니라, 비우고 또 비워서, 마음에 내려앉은 체기를 꺼억하고 시원하게 내보내야 

비로소 편해지는 게 아닐까. 


그나마 시간에서 유동적인 직업을 가진 것을 행운이라 생각해야 하는 건지.

가끔은 결혼이 맞지 않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특히나 요즘처럼 삼시세끼 집에서 아이들과 먹을 식사를 준비할 때면 먹는 것에도 지친다고나 할까.

하루에 하나씩만 비워보자 다짐을 하며 한꺼번에 처리하는 습관부터 바꿔보려고 한다. 

늘 음식 만들기 레시피 영상을 보며 간단하고 만들기 쉬우며 맛있는 메뉴들을 본다. 


당연히 한 끼 한 끼 가족들과 먹는 시간도 소중하기에.

그래도 청소, 설거지, 빨래, 쓰레기 정리로 이루어지는 사람의 잔부스러기들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일단 비우고 또 비워내서 마음의 무거움을 내려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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