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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Feb 07. 2024

타임 패러독스

<사랑의 블랙홀>에서 주인공 '필(빌 머레이)'는 매사 불평불만이 많은 기상캐스터이다. 

시니컬하며 자기중심적인 그는 매년 성촉절(Groundhog Day : 미국에서 마멋(woodchuck)이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날로 2월 2일. 이 날 해가 나서 마멋이 자기 그림자를 보게 되면 다시 동면 상태로 돌아가므로 겨울 날씨가 6주 동안 더 계속된다는 설이 있음)이 되면 펜실베이니아의 펑추니아 마을로 간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칩인데 이 날 이 마을에서 북미산 마멋이 점치는 걸 취재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하는 취재지만 영내키지 않는 그는 빨리 취재를 끝내고 싶다. 같이 간 PD '리타(앤디 맥도웰)와 함께 취재를 해야 하는데, 2월 2일 다음날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바로 3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날이 계속 반복된다는 것. 다시 성촉절이라며 마을은 북적이고 눈은 쌓이고. 알아보니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우리말 제목과 달리 Groundhog Day라는 원제목이 성촉절(경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반복되는 일'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차피 똑같은 하루 하루 차를 타고 자살을 해보기도 하고, 아무 여자에게나 대시하기도 한다. 도둑질을 하거나 PD리타를 꼬셔보기도 하는데, 뺨을 맞는 결론으로 하루가 끝난다. 결국 그는 '리타'에게 이 상황을 고백하고, 처음엔 믿지 않지만 결국 그에게 마음을 열고 믿게 된다. '필'은 2월 2일 하루 마을에 일어날 일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을 뻔한 사람을 구해 주기도 하고, 점점 마을의 삶에 젖어들며 오랜만에 인간다움이 넘치는 하루를 보낸다. 드디어 잠을 깬 어느 날, 기적처럼 2월 3일이 되고, '리타' 또한 그의 곁에 있다.



2월 3일이 되었다.


무려 국민학교 시절 본 영화인데(아, 나이 인증인가) 지금 보니 단순히 사랑 이야기는 아니다. 아마 제목을 번역할 때, 사랑이란 콘셉트로 한 것 같은데 애정전선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관련된 스토리다. 지금은 인생 2 회차자 회귀물이 흔하면서도 인기 있지만 1993년 당시엔 꽤나 획기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다. 물론 '백투 더퓨처'나 '어바웃 타임', '시간 여행자의 아내' , '미드나잇 인 파리' 등 무수한 영화들이 있지만 '사랑의 블랙홀'은 좀 더 9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일상을 이야기한다. 진정한 타임루프를 이야기한다고나 할까. 







누구나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간다. 

가끔은 패턴이 있는 일상이 지겨워져서 다이내믹한 일상을 꿈꾼다. 

그러다 문득 그 일상 속에 안정감과 편안함이 있다는 걸 깨닫기도 한다. 

쳇바퀴처럼 도는 삶을 사는 것 같아 지겹고 지루하다가도, 그 삶을 벗어나서 지내다 보면 일정한 운율이 있는 삶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영화 속에서 '필'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해마다 돌아오는 성촉절 취재, 뻔한 일상, 익숙해진 일들, 그 생활 속에 점점 스스로는 뻔해지고.

그런 그에게 지옥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선물이었던 반복되는 날.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을 거다. 

벗어나고 싶은 날, 그러나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

완벽하게 만족하는 인생이란 없을 거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다는 건 어쩌면 책임지고 싶지 않다는 회피일 수도 있다. 

당장 없어지면 다 해결될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상황과 고민에 빠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럴 때 선택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그냥 하기. 부딪혀보기. 책임지기. 그리고 잘 그만두기.

책임감의 균형을 잡기란 쉽지 않다. 

힘들어도 끝까지 끌고 가는 것이 맞는 건지, 아니다 싶으면 탁 털어낼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한 건지.

그 균형의 시소를 잘 타야 하는데 기준이 될 수 있는 건 나 스스로가 알지 않을까. 







일상에서 행복을 찾으라는 뻔한 말이 아니다. 

떠밀려 무작정 앞으로 가는 듯한 인생에서 잠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잘 구분해 보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기기.

미리 걱정 말고 잘 쪼개서 생각할 일이다.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을 다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오전에 해야 할 일.

오후 3시 전에 해야 할 일.

그리고 저녁에 해야 할 것. 

나름 구분해서 해결한다. 

마치 도장 깨기 하듯이 하나하나 하다 보면 결국 다 해낸다. 


시간을 잘 활용하기란 가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시간의 주인이 되라는 닳고 닳은 말 대신

그 순간을 잘 보내자는 말을 하고 싶다. 

반복되는 일상과 직장 생활이 힘든가요?

자영업자가 되면 인생의 롤러코스터를 공짜로 탈 수 있습니다.

불안한 사업이 힘든가요?

직장에서 야근하면 더 힘들 수 있습니다. 


결론은 완벽한 삶이란 없다는 것.

오늘의 나는 그냥 오늘을 잘 살자고 하고 싶다. 

다음 스텝은, 내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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