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 too late

by 마음돌봄

이젠 늦었어. 다 죽어할 때가 있다.

왜 그 생각을 빨리 못했지.

진작 시작할걸.

특히 나이가 들어가니 자꾸 뭔가 늦은 기분이 더 드는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엔 도대체 뭘 하고 싶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지경이다.


또 나는 시작을 해야 하나, 시작만 하다가 끝까지 못 가보고 죽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끝까지 꾸준히 하지 못한 자의 변명이기도 하다.

내가 끝까지 가본 것은 무엇일까. 알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꾸준히 반복적으로 하는 것.

그 지겨움을 계속해야 찾아오는 결과론적인 만족감.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그 무엇 때문에 하지도 않을 걱정을 하는 게 인간이다.

이런 틈새로 자괴감이나 무력감이 찾아온다.

그 틈을 공략하는 무서운 녀석들.

이럴 땐 무엇보다 돈키호테적 인간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시나 나의 마음 돌봄에 약이 되는 건 '책'이다.


<취미로 직업을 삼다>의 저자이자 85세의 번역가이자 작가 김욱은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그의 생존분투기라고.

일제강점기 시대를 겪은 그는 일본어를 잘하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워 책을 번역했는데 여기까지의 작업이 꽤 녹록지 않다.

저작권이 사라진 일본어 책을 번역할 생각으로 일면식도 없는 출판사 사장에게 전화를 건 그는 대뜸 자신이 이런 사람이며 책을 번역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그가 기자 출신이며 국문학을 전공했고, 칸트와 사서삼경, 성경을 읽는 것은 논외로 한다.

당시 그는 엄청난 빚을 지고 남의 집 묘막살이를 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남들이 은퇴하는 65세 나이에.

그런 열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살아내겠다는 의지.

세상과의 끊임없는 부딪힘.

나 자신과 아내를 먹여 살리겠다는 삶의 뜨거운 자기애.

지금의 나 자신을 절대 우습게 보거나 함부로 여기면 안 된다는 말을 책에서 남긴다.

아직 40대인 나는 과연 늦은 시작을 염려하고 탓할 자격이 있는가.

이토록 뜨거운 할아버지가 계신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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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보그> / 2018년 프랑스 잡지 '로피시엘'


1947년 열다섯의 나이에 잡지 <보그>의 모델이 된 카르멘 델로피체는 정확히 66년 후인 2013년 다시 한번 <보그>의 표지를 장식한다.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뮤즈이기도 했던 그녀에게 지금의 세상도 인정하고 열광하는 건, 세월 속에 묻어난 특유의 연륜이다. 아직도 발레로 몸관리를 하고 흰머리를 숨기지 않아 자연스레 세월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그녀는 여전히 현역이다.


김욱 작가의 말에 따르면 늙은 세포는 공격을 받을 때 오히려 최상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한다. 성장의 지속이 궁극적인 목표인 젊은 세포와 달리 늙은 세포는 성장에는 무리가 있을지언정 지속에는 별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성장 과정에서 익힌 모든 재능과 인내를 총동원하기 때문에.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발전하고 생존한다.

경험한다, 무수히 많은 삶들을.


나 이듬은 그 모습 그대로 지혜롭다.

이미 쌓인 경험과 개인의 역사가 빛을 발한다.

나 자신을 위한 시작을 계속해보는 것.

나이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건 해보는 것.

더 신중하게 생각할 줄 알고, 경험을 발판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더 아름다운 나이 든 내가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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