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돌봄 Feb 18. 2024

Not too late

이젠 늦었어. 다 죽어할 때가 있다. 

왜 그 생각을 빨리 못했지.

진작 시작할걸.

특히 나이가 들어가니 자꾸 뭔가 늦은 기분이 더 드는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엔 도대체 뭘 하고 싶었는지조차 생각이 나지 않는 지경이다. 


또 나는 시작을 해야 하나, 시작만 하다가 끝까지 못 가보고 죽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끝까지 꾸준히 하지 못한 자의 변명이기도 하다.

내가 끝까지 가본 것은 무엇일까. 알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꾸준히 반복적으로 하는 것. 

그 지겨움을 계속해야 찾아오는 결과론적인 만족감.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그 무엇 때문에 하지도 않을 걱정을 하는 게 인간이다. 

이런 틈새로 자괴감이나 무력감이 찾아온다.

그 틈을 공략하는 무서운 녀석들.

이럴 땐 무엇보다 돈키호테적 인간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역시나 나의 마음 돌봄에 약이 되는 건 '책'이다.


<취미로 직업을 삼다>의 저자이자 85세의 번역가이자 작가 김욱은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그의 생존분투기라고.

일제강점기 시대를 겪은 그는 일본어를 잘하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워 책을 번역했는데 여기까지의 작업이 꽤 녹록지 않다. 

저작권이 사라진 일본어 책을 번역할 생각으로 일면식도 없는 출판사 사장에게 전화를 건 그는 대뜸 자신이 이런 사람이며 책을 번역하겠다고 한다. 

여기서 그가 기자 출신이며 국문학을 전공했고, 칸트와 사서삼경, 성경을 읽는 것은 논외로 한다.

당시 그는 엄청난 빚을 지고 남의 집 묘막살이를 하던 중이었던 것이다. 

남들이 은퇴하는 65세 나이에.

그런 열정은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살아내겠다는 의지. 

세상과의 끊임없는 부딪힘.

나 자신과 아내를 먹여 살리겠다는 삶의 뜨거운 자기애.

지금의 나 자신을 절대 우습게 보거나 함부로 여기면 안 된다는 말을 책에서 남긴다.

아직 40대인 나는 과연 늦은 시작을 염려하고 탓할 자격이 있는가.

이토록 뜨거운 할아버지가 계신데.




1947년 <보그>  / 2018년 프랑스 잡지 '로피시엘'


1947년 열다섯의 나이에 잡지 <보그>의 모델이 된 카르멘 델로피체는 정확히 66년 후인 2013년 다시 한번 <보그>의 표지를 장식한다. 

작가 살바도르 달리의 뮤즈이기도 했던 그녀에게 지금의 세상도 인정하고 열광하는 건, 세월 속에 묻어난 특유의 연륜이다. 아직도 발레로 몸관리를 하고 흰머리를 숨기지 않아 자연스레 세월 그 특유의 아름다움을 드러낸 그녀는 여전히 현역이다. 


김욱 작가의 말에 따르면 늙은 세포는 공격을 받을 오히려 최상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고 한다. 성장의 지속이 궁극적인 목표인 젊은 세포와 달리 늙은 세포는 성장에는 무리가 있을지언정 지속에는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이미 성장 과정에서 익힌 모든 재능과 인내를 총동원하기 때문에.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발전하고 생존한다.

경험한다, 무수히 많은 삶들을.


나 이듬은 그 모습 그대로 지혜롭다.

이미 쌓인 경험과 개인의 역사가 빛을 발한다. 

나 자신을 위한 시작을 계속해보는 것.

나이와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건 해보는 것.

더 신중하게 생각할 줄 알고, 경험을 발판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더 아름다운 나이 든 내가 기다리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Happiness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