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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Mar 09. 2024

우리의 '고영희'씨

'삐약삐약 병아리'

학교를 파하면 으레껏 병아리를 판매하는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항상 동생은 한 마리씩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몇 년 살던 때인데 어릴 적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와는 달리 소중하다는 듯 꼭 안아 들고 집으로 오던 동생. 이상하고 안타깝게도 두 마리는 죽었는데, 할머니는 왜 자꾸 사 오냐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셨다. 


세 번째로 우리 집 식구가 된 병아리는 깃털이 유난히도 샛노랬다.

박스에 집을 마련해 주고 애지중지 키우던 병아리. 삐약거리며 가느다란 소리만 내던 녀석은 점차 대범하게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조류가 싫었던 나는 꽥꽥거리며 도망 다니기 일쑤였다. 말 그대로 무럭무럭 자라그 아이는 제법 닭의 외형을 갖춰갔다. 영계가 된 것이다. 본격적으로 무섭기 시작했다. 진짜 큰 닭이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당당하게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자니 네가 주인인지 내가 주인인지 모를 지경이었는데 그런 녀석의 모습마저 귀여운지 동생은 이름까지 붙여주며 잘 키웠다. 그 후로 과연 닭이 되었을까? 노노. 할아버지가 잡아 잡수시고 말았다는 슬픈 전설이다. 

으악, 닭의 운명이라. 인간은 이리도 동물들에게 죄를 짓는단 말이냐.

몇 년 후 '날아라 병아리'라는 노래가 나오면서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우리 집 얄리가 생각나곤 했다. 








그 후로도 반려 동물을 키우고 싶은 동생의 희망은 멈추질 않았다. 

이젠 아기고양이에게 꽂혀버린 동생은 집에서 키우고 싶어 했다.

너희들 키우기도 바쁘다며 부모님은 안된다고 하셨지만 뭔가 기댈 곳이 필요했던 걸까.

동생의 고양이 사랑은 멈출 줄을 몰랐다. 

데려온 고양이가 많이 약해서 한 마리는 땅에 같이 묻어주었는데 동생이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다시 우리 집에 찾아온 고영희 씨는 바로 '똥고양이'.

여전히 동물을 무서워하는 나.

동물을 사랑하는 동생.

사춘기에 시작된 동생의 고양이 사랑은 이제 완전히 정착된 듯 보였다.

집에서 혼자 김 씨 성을 가진 엄마의 뜻에 따라 친정 엄마의 성을 붙여서 '김요한'이라고 이름을 붙여줬다.

신기하게도 '요한아' 하고 부르며 알아서 달려오고, 언제 봤는지 우리처럼 문고리를 잡고 문을 열려는 모습을 보면서 고양이인 척하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제법 귀엽기도 했다. 

여전히 만지는 건 무서웠지만 동생이 침대에서 잘 때 머리맡에서 둥글게 몸을 말거나 식빵 자세로 있는 자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 아이도 감정이 있구나. 참 포근한 생각이 들었다. 

겁이 많았지만 집안에 안정감을 주었던 요한이는 12년여를 살고 우리 곁을 떠났다. 

시름시름 앓다가 병원에서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함께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는 길.

너무나 눈물을 많이 흘려서 식구들은 다 침울해했고, 상실감이 어마어마했다.

슬픈 게 싫어서 다시는 그 어떤 동물도 키우고 싶지 않다고 엄마는 말씀하셨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지만 가슴 한 구석이 베인 것 같은 아픔은 아무도 느끼고 싶지 않을 것이다.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사람 말을 못 할 뿐 감정이 통하고 말귀를 알아먹고, 마음의 유대를 느꼈던 존재를 잊기는 힘들다. 이제 더 이상 반려 동물을 키우지 않는 동생이다. 나 또한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 뒤로 그들의 죽음 이후가 두렵다. 언젠가 어느 날에 동물 친구를 만날지도 모르겠다. 그때가 지금은 아니다. 헤어짐을 알고 시작하는 관계는 여전히 공허하다. 슬픔을 슬픔으로 느끼고 싶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도 사랑을 많이 주었던 기억이 있기에 지금은 무덤덤하게 지낼 수 있다. 동생도 새로운 인연과 다음 인생을 시작했기에 마음이 춥지는 않을 것이다. 동물의 따스한 온기와 애정으로 가득했던 그녀는 지금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동생이 어리고 예민했던 그때에 기쁨을 주었던 요한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도 너 귀여워했어. 잘 지내. 다음엔 사람으로도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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