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하는 경제 서적을 읽다가 워런 버핏도 알고, 빌 게이츠도 알게 되었지만 책을 읽는 내 모습에 만족할 뿐 현실에 적용할 줄은 몰랐다. 경제 용어는 여전히 낯설고 통장은 여전히 텅장이다.
벌써 시세 1억이 넘는다는 비트코인.
정말 1도 모르는 세계다.
나의 재테크의 역사는 초라하다.
이 나이면 부동산이며 주식이며 다들 기똥차게 재테크를 한다는데 여전히 노동 수입에만 기대어 살고 있다.
자면서도 돈을 벌 수 있는 삶을 꿈꾸지만 아직은 요원하다.
겨우 주워들은 것이라고는 엔잡러나 지적재산권 수입 정도이다.
디지털노매드를 꿈꾸지만 아직 쉽진 않고, 멀티플레이어를 원하지만 한 가지 일에 정통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이 나이쯤 되면 재테크 꽤나 할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이 이렇게도 잘 사는 걸 보면 역시 인복 하나는 타고났지 싶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고 믿는 편이다.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각자의 타고난 복이란 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바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나만의 숨은 무기이자 함부로 죽음을 선택하지 말라는 신의 안전 방어 장치쯤 된다. 내 운명 내가 알아서 하겠어라고 자신 있게 외치던 시절도 있었고, 인복이 있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된 계기도 여럿 있었다. 사놓은 주식이 폭등하여 갑자기 없던 돈이 생기거나, 우연히 증여받은 스톡옵션이 대박이 나서 몇 역씩 통장에 꽂히지는 않지만 나만의 딴 주머니는 확실히 있다.
바로 '사람'이다.
삼국지에서 조조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도 그가 인재를 좋아하고, 사람을 품을 줄 아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많이 긍정적이기도 한 그를 보며 마냥 싫어할 수만은 없다. 내가 사람을 다 품어주는 넉넉한 마음의 소유자는 아니다. 반대다, 오히려. 나를 품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에 꽂힐 때 좌우를 안 보고 일하는 스타일인데 그 외엔 참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챙김을 참 많이 받는다. 업무적으로나 개인적인 모임에서도 그러하니 어찌 보면 참 귀찮은 스타일이면서 뭔가 미워할 수 없는 포인트를 가진 인간이 나다. 데헷. 한때는 주변에 피해를 준다는 생각에 오로지 혼자서 일할 수 있는 일만 찾아서 했지만 서서히 타인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밑천이 드러날까 봐 혹은 말도 안 되는 이상주의와 상상력이 들통날까 봐 엄격한 척 근엄한 척했지만 한 번 물꼬를 트고 나니 어설픔과 환장할 해맑음이 여지없이 흘러나온다.
특출난 재주도 오랜 시간 달여온 쌍화차처럼 진득한 능력도 없지만 폼나게 살아보겠다는 덕지덕지한 욕망 하나로 잘 버텨나가고 있다. 날 좋다고 말해주는 사람, 귀엽다고 말해주는 사람.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바로 나에겐 비트코인이고 주식이고, 부동산이다. 언제 돌아설지 모르는 게 사람이고 돌아서면 남이 되는 게 사람이라지만 인간관계를 갈망하고 자꾸 그리워하는 게 사람 아니던가.
사람의 기운이라는 것, 무시 못할 일이다.
한 사람의 영웅이 나라를 구하는 것처럼.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나 자신을 '좋은 사람들' 속에 놓는 것뿐이다.
그거 하나는 바로 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거 하지 못하는 거 안타까워 말고,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게 낫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