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esent
인간은 독립적이며 자유 의지를 추구하는 본능이 있다.
제 아무리 한국 교육이 주입식이라 할지라도 인간의 자립 의지와 자기 주도적 삶에 대한 열망은 꺾을 수 없다.
첫 번째 자아실현의 결단은 20대 초반이다.
점수에 맞춰 간 대학은 나름 재미있었다.
재수를 할 의향도 목적도 없었기에 에헤라디야를 외치며 나름의 대학 생활을 즐겼다.
달콤한 자유와 대학의 낭만 속에서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미래에 대한 계획은 마냥 공상으로 끝나기 일쑤였다.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불붙은 마음.
이 나이에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다하자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계절학기를 끝으로 졸업을 했다.
주어진 생활만 했을 뿐 구체적인 목적도 방향도 없이 시작한 임용고시 준비는 공부량에 학을 떼고 일찌감치 포기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뭐 하면 밥 먹고 살아야 할지 방황만 한채 하릴없이 시간만 흘렀다.
일찍 퇴직을 하신 친정 아빠는 나에게 학원을 하라며 당신은 차량 기사를 하겠다고 하셨고, 본인 의사는 고려하지 않고 혼자서 정해버린 나의 미래에 불같이 화를 냈다. 나도 모르는 내 미래를 왜 마음대로 결정하냐며 쏘아붙였다. 하고 싶은 건 많았는데 뭔가 모르게 발목을 붙잡는 느낌에 마음만 요란했다. 큰 딸이라는 부담감, 일곱 살이나 어린 동생. 불안한 심리의 엄마. 기울어진 가족의 경제 사정만큼이나 나의 시야는 좁아졌고, 움츠러들었다. 어른이 되려면 독립을 해야 하는데, 마음은 집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동생을 두고 서울로 직장 생활을 하러 갈 수가 없었다. 당시엔 정말 그랬다. 서울 취업을 포기하고 시작한 대형 어학원 강사 일은 20대 마지막 시기 가장 신나고 재미있던 순간이었다. 지방대 출시 강사의 처우는 인서울 대학을 졸업한 강사보다 그리 좋진 않았지만, 20대의 마지막 시기까지 일한 그곳은 또래 선생님들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뿐,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뛰어든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자아 독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도망치듯 선택한 결혼, 남편은 나의 도피처였다.
결혼을 소꿉놀이처럼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고 생각했다.
미국으로 유학 간 친구 부부를 빼고 동창들 중에서 가장 빨리 결혼을 했었다.
결혼 초반, 며느리 길들이기를 시작하신 어머니는 가르침이라는 명목하에 여러 가지를 지적하시고 바꾸기를 원하셨다. 청소, 요리, 정리 등등 살림이 버거운 사람이었던 나는 기준에 맞추려 노력했지만 몸에 배지 않은 습관을 첨탑처럼 세우기란 쉽지 않았다. 벼룩이 유리 천장이 있는 줄 모르고 계속 뛰다가 유리 천장을 거둔 후에도 딱 그 높이만큼만 뛰는 것처럼 기를 피고 살 줄 몰랐다. 집에서 탈출한 줄 알았더니 다른 힘듦이 계속되었다. 평생 할 수 없다면 자신을 드러내고 살아야 하는데 마냥 어른들에게 맞춰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결혼 전부터 쪼그라든 자존감은 더욱더 펴질 날이 없었고, 넉넉지 않은 친정 걱정과 외벌이에 딱 그만큼 마음은 우울해져 갔다. 어서 아이들을 키우고 일하러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남편과는 인연인지 사이는 좋았지만 나중에서야 깨달은 당연한 진리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살 수 없는 인간은 결혼을 해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인생의 순간순간을 회피한 결과이다.
살면서 느꼈던 행복과 평범하고 감사한 일상을 제외해 보았다.
깨달은 것은 나 자신의 자존감과 마음을 세우지 못하면 어떤 환경에 가더라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탈출을 해도 계속되는 공포의 방처럼 또 다른 상황이 펼쳐진다.
좀 쿨해질 필요가 있다.
그 자리, 서 있는 그곳에서 넘길 건 넘기고 그냥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20대, 30대는 영원하지 않다.
끝없이 펼쳐질 젊음도 건강도 없다.
매 순간 나 자신의 건강한 욕망에 충실하며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순간을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한다.
하기 싫은 일을 적어라. 그것부터 먼저 해라. 마음이 가벼워질 거다.
이제 탈출을 꿈꾸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해결할 방법을 찾겠다.
피하고 싶은 관성의 법칙이 머리를 들어 올리지만 최대한 맞서보겠다.
영원한 탈출구는 없다.
현재만 있을 뿐.
두 번째 자아실현의 순간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