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무져 보인다고 했다.
진실은 나만 알고 있었다.
딱 부러지지도 어른들이 말하는 불여우처럼 사나운 이미지도 아니었다.
큰 딸, 부모님 말 잘 듣는 착한 딸.
모범생.
나를 이루던 수식어였다.
친한 친구들과 까불며 놀고, 교환 일기를 쓰며 밤새 라디오를 듣던 아이.
좋아하는 가수가 오면 싸인 정도는 받으러 다니고 가끔은 야간자율학습을 빼먹고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가던 아이. 소위 땡땡이를 치고 시내 극장으로 가던 길에 만난 엄마는 "우리 딸, 여기서 보네. 적당히 놀고 들어 가."라며 유유히 반대 방향으로 떠나셨다. 어쩌면 크게 제약을 두거나 공부하라고 옥죄는 엄마가 아니어서 더 반항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는지 모른다.
고전 영화를 안내해 준 엄마는 어릴 때 머리맡에서 늘 책을 읽어주셨고, 그 영향인지 책에 대한 기억과 종이 냄새는 늘 좋은 기억으로 그림자처럼 내게 붙어있다. 더불어 고전 영화도 함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면서 엄마는 '비비안 리'의 갈매기 눈썹과 자존심 강한 고고한 표정, 가느디 가는 허리에 감탄사를 연발하셨다. OTT도 없던 시절 주말의 명화나 명절특선영화에서 언제나 그 영화를 보곤 했다. 고전 영화 속 미인들을 보며 영화를 즐기던 중 엄마는 내게 <자이언트>라는 영화를 소개하셨고, 이후 <이유 없는 반항>, <에덴의 동쪽>까지 '제임스 딘'의 매력에 푹 빠졌는데 그의 죽음조차 안타까우면서 그와 어울린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껏 추켜올린 볼륨 헤어,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눈썹, 살짝 추켜올린 입꼬리와 셔츠와 카우보이 모자까지. 반항아라면 이런 모습이야 라는 전형을 보여준 배우. 츤데레의 원조. 영화 속에서 그의 방황과 반항은 꽤나 설득력이 있었고, 특히 <자이언트> 속 모습은 첫사랑에 대한 마음, 그래서 더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외로운 청년의 모습부터 노년까지 잘 표현한 명배우다. 내게 반항이라면 언제나 생각나는 그의 모습은 깊은 어둠이라 기는 보다는 보호해주고 싶은 청년의 모습이다.
훨훨 날아서 자유롭게 집을 떠나고 싶었던 20대 초반을 제외하면 의외로 유년 시절은 딱히 엇나갈 이유도 반항할 이유도 없던 평범하고도 무난한 학생이었던 나. 일곱 살 아래 동생도 가출하면 개고생이라며 절대 가출 같은 건 하지 않는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냈다.
반항이란 이름은 부정적인 것의 대표 선수가 아니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지나쳐 가는 무수한 정거장 중 하나다.
지랄 총량의 법칙은 차치하고서라도 반항이란 '자기 주체적 의사 표현'의 표본인 것이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결국 더 큰 목소리 앞에서 묻히는 법이다.
표현하라, 자기 자신을 진짜 사랑하고 싶다면.
드러내라, 매너 있게.
조절하라, 너무 참지도 말고 지나치게 묵히지도 말고.
무작정 타인에게 상처 주거나 나 자신을 갉아먹는 것 말고 이유 있는 반항을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