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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May 23. 2024

나의 열여섯을 지켜준 것들

친구 문제와 공부에 대한 고민으로 다사다난했던 중학생 시절.

질투와 우정으로 점철된 친구와의 관계는 지금은 기억나지 않은 이유로 끝이 났지만 나쁜 결말은 아니었다. 

열심히 아스테이지로 만든 핸드메이드 필통 속엔 다양한 필기도구가 가득했고, 지금의 여중생들을 봐도 이 점은 크게 변화가 없다. 


교환 일기를 쓰던 친한 친구와는 공부 때문에 서로 질투도 했지만 우리를 사심 없이 하나로 묶어주던 것이 있었다. 바로 영화였다. 시나리오 작가를 막연하게 장래 직업을 생각하게 할 만큼 영화는 꽤 큰 의미로 다가왔고 청량한 90년대의 감성은 드라마와 영화에서 더 뜨거웠다. 90년대의 여름밤, 토요일 오전의 냄새, 지금도 유명한 배우들의 청춘은 너무나 싱그럽게 브라운관에 담겨 있었고, 문화면에서 풍요로웠던 IMF사태 이전의 공기는 설레는 감정으로 가득 찼다. 칵테일 사랑, 일과 이분의 일, 전문직 드라마와 연애 드라마, 신데렐라 성공스토리는 충분히 어린 여중생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할리우드 키드들이 영화 시장에 나타나면서 풍부해진 미장센과 다양한 주제들이 한국 영화의 부흥을 이끌며 관객들을 행복하게 했고, 그 현장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절세 미남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사진과 영화로 십 대 시절을 보냈는데, 지금처럼 OTT도 없던 시절은 역시나 비디오나 <프리미어>, <스크린>, <씨네 21> 같은 영화 잡지만이 유일한 창구였다. 열여섯의 나는 설렜고, 질투했고, 문화를 향유했다. 만화, 영화, 드라마의 르네상스였던 90년대가 지금과 같은 여름의 문턱에선 더 그립다. 상큼하게 터져주는 공기가 사이다처럼 톡 터지는 청량함이, 신비로운 밤의 공기가 아직도 있는 듯하다. 


마치 학교와 교육 체계를 바꾸는 혁명가가 된 듯, 불러대던 서태지와 H.O.T의 노래까지 지금은 귀엽지만 당시엔 진지했던 수많은 교복 입은 소녀들이 눈에 선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던 친구가 추천해 준 <로빙화>는 아직도 읽어보지 못한 채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지만 여전히 도서관에서 그 책이 보일 때면 열여섯의 그때가 생각난다. 아침에 열심히 읽던 책들은 저녁이면 문제집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초록색인 나무들을 보며 시간은 잠시 그때로 흘러간다. 


그때의 내 나이가 되어가는 아이들을 볼 때면 그들에게 열여섯의 여름은 어떻게 기억될지 궁금하다. 

너무도 푸르러서 가슴 시리거나 힘든 기억이 아닌 그래도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로 기억이 되면 좋겠다. 

시간은 흐르면 나쁜 기억은 희석되고 좋은 기억만이 남는다.

억지로 체에 거르지 않아도 알아서 남을 것이다.

즐겨라,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열여섯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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