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당신의 이야기
장마가 몇 주째 기승이다.
빨래는 <영구와 땡칠이> 속 영구가 달릴까 말까 하는 것처럼 '마를까 말까'를 반복하고 있다.
엄마의 삶은 무수한 빨래더미 속에서도 발견되는데 보송보송 버석 마른빨래를 만질 때 느껴지는 개운함이 있다. 섬유유연제가 향이 가볍게 날리며 옷감 속까지 마른 것 같은 느낌이다.
요 몇 주 간은 건조기와 콜라보에 옷감이 다이어트한 듯하다.
어쩌다 잠깐 나는 햇빛에 빨래가 마르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가 다시 비가 내리면 눅눅한 습기에 뭉친 어깨가 더 뻐근하다.
빨래를 개고 정리하고를 반복하다 아이들에게 위임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언제였던가.
우산을 써도 마구 쏟아지던 비에 어깨가 다 젖던 그때.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첨벙첨벙하며 걸어 다니던 때는 비에 온몸이 젖어도 즐거웠다.
비 오는 날씨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
할머니댁 마룻바닥에 엎드려 옥수수를 먹다가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던 오후.
증조할머니가 옆에서 연신 파리채로 파리를 잡으셨는데 하루 중 당신의 가장 큰 소일거리셨다.
70이 넘어서도 계속되는 시집살이에 할머니는 지쳐 계셨지만 손녀딸은 할머니가 두 분이나 있다며 신나기만 했었다.
교실 밖 비 오는 모습을 보면 쨍한 초록의 잎들엔 물방울이 알알이 맺혔는데, 그런 날은 선생님들도 고요하고 친구들도 조용했다. 산성비가 내린다며 호들갑을 떨다가도 규칙적인 빗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빨래를 주도적으로 안해서구나.
간단명료한 정답.
엄마가, 할머니가 다 해주셔서 그랬구나.
그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빗소리만 즐겨도 되던 시절이라 그런 거다.
눈이 펑펑 내리면 더 좋고, 비가 철철 내려서 첨벙거릴 수 있는 웅덩이가 많아도 좋고.
지금은...
한 가지 다행인 건 새벽에 잠깐 잠에서 깨면 들려오는 빗소리는 아직 좋다는 것.
여기저기 부딪히는 빗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달라진 점도 있다.
가끔은 동영상 서비스에서 빗소리를 찾아서 듣는다는 것.
상쾌한 백색 소음을 애써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곤 깨닫는다.
아, 의식의 흐름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