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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Jul 17. 2024

날씨와 생활

비와 당신의 이야기

장마가 몇 주째 기승이다.

빨래는 <영구와 땡칠이> 속 영구가 달릴까 말까 하는 것처럼 '마를까 말까'를 반복하고 있다. 

엄마의 삶은 무수한 빨래더미 속에서도 발견되는데 보송보송 버석 마른빨래를 만질 때 느껴지는 개운함이 있다. 섬유유연제가 향이 가볍게 날리며 옷감 속까지 마른 것 같은 느낌이다.

요 몇 주 간은 건조기와 콜라보에 옷감이 다이어트한 듯하다.

어쩌다 잠깐 나는 햇빛에 빨래가 마르는 걸 보면 기분이 좋다가 다시 비가 내리면 눅눅한 습기에 뭉친 어깨가 더 뻐근하다. 

빨래를 개고 정리하고를 반복하다 아이들에게 위임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언제였던가.

우산을 써도 마구 쏟아지던 비에 어깨가 다 젖던 그때.

고여있는 물웅덩이를 첨벙첨벙하며 걸어 다니던 때는 비에 온몸이 젖어도 즐거웠다. 

비 오는 날씨가 주는 특유의 분위기.

할머니댁 마룻바닥에 엎드려 옥수수를 먹다가 빗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던 오후.

증조할머니가 옆에서 연신 파리채로 파리를 잡으셨는데 하루 중 당신의 가장 큰 소일거리셨다.

70이 넘어서도 계속되는 시집살이에 할머니는 지쳐 계셨지만 손녀딸은 할머니가 두 분이나 있다며 신나기만 했었다. 

교실 밖 비 오는 모습을 보면 쨍한 초록의 잎들엔 물방울이 알알이 맺혔는데, 그런 날은 선생님들도 고요하고 친구들도 조용했다. 산성비가 내린다며 호들갑을 떨다가도 규칙적인 빗소리에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왜 좋았을까?

장마가. 비 오는 날이.




빨래를 주도적으로 안해서구나.

간단명료한 정답.

엄마가, 할머니가 다 해주셔서 그랬구나.

그저 영화 속 주인공처럼 빗소리만 즐겨도 되던 시절이라 그런 거다.

눈이 펑펑 내리면 더 좋고, 비가 철철 내려서 첨벙거릴 수 있는 웅덩이가 많아도 좋고.

지금은...


한 가지 다행인 건 새벽에 잠깐 잠에서 깨면 들려오는 빗소리는 아직 좋다는 것.

여기저기 부딪히는 빗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달라진 점도 있다. 

가끔은 동영상 서비스에서 빗소리를 찾아서 듣는다는 것.

상쾌한 백색 소음을 애써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곤 깨닫는다.

'빗소리 녹음해서 ASMR 만들면 떼돈 벌겠는데'


아, 의식의 흐름이여.



사진: Unsplash의Leon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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