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에 먹은 삼계탕
어찌나 정신없이 먹었던지 사진 한 장 없는 지금이다.
몸이 허해서 마트에서 삼계탕을 사 와야겠다는 남편의 말에
세일하는 삼계탕용 닭 두 마리를 준비해서 푹 고왔다.
삼계탕용 탕감, 마늘과 양파, 파만 집어넣고 압력솥에 칙칙 끓여서 먹이고 나니 다음 날이 든든했다는
후문이다.
조상님들의 절기는 어찌나 지혜로운지 정말 딱 그때가 되니 몸이 허하다고 한다.
남편은 삼계탕에 대한 보답인지 마트에서 레디메이드 삼계탕을 사 왔고, 뭐 얼마나 맛있겠어하고 먹은 나는 깜짝 놀랐다. 업그레이드된 진한 국물에 양도 꽤 많은 답이 옹골지게 자리 잡고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시댁에서 녹두에 전복까지 들어간 삼계탕을 가족끼리 먹는 게 일 년 중 행사였는데
아이들이 크고 보니 예전처럼 모여서 먹질 않는다.
집에서 뭐든 간단히 빠르게 먹을 수 있는 게 좋다.
빨래도 그렇다.
복잡한 건 싫으니 뭐든 전문가에게 맡기기.
나의 시간 절약하여 너의 시간 아껴주기.
삼계탕이든 마라탕이든 입에 맞는 거 많이 먹어서 이 여름 한 철 또 잘 보내봐야지.
한때는 흑염소탕을 먹으면 힘이 솟더니 이제는 그마저도 시원치 않다.
퇴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당장 할 수 있다면 더 좋지만 그 상황은 요원하다.
작금의 우리는 현생과 이상을 잘 버무려가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퇴근이 늦어진다면 졸린 눈을 비벼가며 버티며 해야 할 것이다.
무엇 때문인지 왜 때문인지는 몰라도 하고 싶은 거라도 하고 살자는 마음이 보글보글 라면 국물처럼 넘친다.
물가도 오른 요즘 고려조 삼계탕도 능이백숙도 너무나 좋지만
대기업표 삼계탕도 끝내준다.
최고의 연구진이 맛과 영양을 연구한 데다가 빠르고 간편하게 요리할 수 있도록 시간까지 아껴준다.
누구나 아는 그 맛.
익숙한 그 맛.
남은 중복과 말복에도 대기업과 함께 간다.
기다려라, 지친 육신이여.
땀 흘려 쓰러지기 전 맛난 국물 넣어줄 터이니.
주기적으로 남의 삶을 먹어야만 하는 인간인지라 미안하고 미안하지만
채식주의자는 팔자에 없으니 가끔만 먹겠다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