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혹은 여행
언제부터였을까?
누가 여름엔 휴가를 가라고 정해줬을까.
특히 7월 마지막 주부터 8월 초에 말이다.
경계는 무너졌다.
7말 8초가 아닌 8월 말이나 가을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
휴가라는 말보다 여행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너무 후덥지근하니 더위를 피하라는 의미인 것 같긴 한데, 지금은 어느 때고 여행을 떠나는 세상이니 말이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을 빼놓고선 지구상의 그 누구도 한 곳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
심지어 그 시기에도 온라인으로 여행을 했었다.
어느 여행 플랫폼에서 온라인으로 가이드를 따라 이탈리아를 여행했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가이드의 행적을 따라 함께 걷고, 커피를 마시고 우피치 미술관을 봤다.
언젠가 다시 실제로 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비록 랜선 여행이었지만 해방감이 느껴졌다.
문득 14살의 여름이 생각났다.
진짜 해방감과 자유로움은 그때 경험했다.
6살이었던 동생과 부모님과 함께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
차종도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가족은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멈추는 그곳에서 물놀이를 하고 숙소를 잡고 다시 아빠가 운전해서 떠나고.
아무런 계획도 예약도 없었지만 발길 닿는 곳이 목적지였던 그 여행은 아직도 그 느낌이 남아있다.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으신 부모님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고
뒷좌석에 앉은 나와 동생은 놀다가 자다가를 반복했다.
한참 사춘기였던 나는 내 무릎을 베고 잠이 든 동생이 귀찮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귀엽기도 했다.
내비게이션도 없던 때라 오로지 아빠의 운전 솜씨만 믿고 다니던 시절이다.
며칠을 다녔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
여전히 뒤에서 바라보던 한참 젊었던 엄마 아빠의 뒷모습과
마냥 어렸던 귀여운 꼬마 동생이 기억이 난다.
언뜻 다보탑 앞에서 사진을 찍었던 것도 같고, 지리산을 넘었던 것도 같다.
여전히 한 여름의 지리산 계곡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보며 그 언저리를 여행했던 게 아닐까 싶다.
오랜만에 사진첩을 꺼내봐야겠다.
지금 내 아이들의 나이였던 커다란 소녀가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웃고 있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부모님과의 휴가는 어떻게 기억될까?
어렴풋이 혹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면 좋겠다.
그 추억만큼 가족의 서사가 쌓이는 거니까.
사진으로 그 찰나를 남길 수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흘러가는 시간을 잠시 붙잡아 박제할 수 있다는 건 인류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무심코 흘러가는 1분 1초가 행복을 만든다.
그 순간을 잡아서 죽는 순간까지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더 이상 엄마 아빠와 많은 곳을 아이들이 가지 않는 나이가 될 것이다.
친구들과 연인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다.
그전까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야겠다.
가족과의 여행이 주는 설렘이 너무나 소중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