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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Aug 03. 2024

웃프다, 너.

영화 <파일럿>

웃기고 재밌는데, 슬프기도 하네.


실컷 소리 내어 웃으시며 영화를 보시고 난 후, 이게 뭔 말이신지.

아침 10시, 생각보다 극장은 엄청나게 한가했고, 기다란 소시지와 빵만 덩그러니 있는 5000원 자리 핫도그에도 함박웃음을 지으시던 엄마의 영화 후기는 한 마디로 '웃프다'였다.


엄마와 볼 수 있는 영화가 얼마나 될까?

그 마음 하나로 내 눈에 딱 들어온 영화가 <파일럿>이다.

사실 만만치 않은 영화표 값에 꼭 극장에서 보고 싶은 영화만 나름 엄선하여 극장에 간다.

주로 아이들과 가는 극장이지만 이번 영화는 처음부터 엄마와 보러 가기로 했다.

아빠와도 가고 싶었지만 가지 않으시겠단 말에 엄마와 단둘이 데이트가 되었다.

사진을 찍어보니 갈수록 회춘하시는 엄마와 주름이 늘어가는 딸이 그 안에 있었다.

딸이랑 오랜만에 극장에 가신다며 하늘하늘 원피스에 화장까지 예쁘게 하신 엄마는 연신 사진을 찍자고 하셨고, 들어간 극장칸의 리클라이너 의자와 시원한 실내 공기는 기대했던 것만큼 청량했다.




한정우 & 한정미

주인공 한정우(조정석)는 유퀴즈에 출연할 정도로 인기 파일럿인데, 공군사관학교 수석 졸업에 비행 솜씨는 잠을 자던 승객이 착륙한 줄도 모를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항공사 승무원 회식에서 노상무와 승무원들 사이에서 완급 조절을 나름 하던 그는 성차별적 발언으로 나락으로 가면서 동생의 신원을 빌려 여성 파일럿으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남자친구도 결혼 계획도, 난자를 얼릴 계획도 없는 여성 파일럿의 탄생이었다. 이후 여성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이혼한 부인의 마음도 이해하는 등 자신이 삶을 돌아보게 되는데, 아버지 없는 집의 장남으로 최선을 다해 공부하고 돈을 벌고 집안을 책임졌던 모습은 지킬 것이 많은 우리의 모습도 보인다. 잘 나가던 파일럿이 퇴출되고 대출금 걱정, 양육비 걱정, 생활비 걱정 등등을 하게 되는 모습도 비슷하다. 직업마다 연봉이 천차만별이고 상황도 다르겠지만 결국엔 사람 사는 모양새는 유사하지 않던가. 비록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싶었던 그가 아들의 꿈을 몰랐고, 아내가 알레르기가 생긴지도 몰랐지만 자신의 무관심을 인정하고 아들의 꿈을 응원하고 전 아내에게 사과하는 모습. 쪽팔리게 살지는 말자는 말에 옳은 길을 선택한 모습 또한 주인공스럽다.



트로트 가수를 좋아해 성지순례를 하고, 유튜브를 찍고 골드버튼을 받는 엄마. ASMR뷰티 유튜버 동생. 요즘 시대에 걸맞게 유튜브와 사람들의 순간적인 관심과 댓글 사이를 교묘하게 오고 가며 코믹과 인생의 균형 있는 발란스를 맞추고 있다.


믿고 보는 배우 조정석의 하드 캐리와 여동생으로 나온 한선화 배우와의 케미도 좋고, 오너의 조종대로 흘러가지 않고 자기를 지키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코믹을 가미하다 보니 일련의 요소들이 개연성이 없거나 현실성이 떨어져도 괜찮았다. 이건 영화고 영화의 역할은 현실 반영도 필요하지만 관객의 마음을 터치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를 통해 오만 가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영화는 성공인 것이다.

대출금 걱정, 양육비 걱정을 하는 주인공에 이입되어 웃긴데 짠하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으잉 하는 반응을 보였지만 그 또한 신선한 느낌이었다. 내 눈에 보인건 헤드윅이라는 뮤지컬을 통해 여성 캐릭터 연구를 수십 년 해온 배테랑 배우이지만 또 다른 여성인 '한정미'를 만나며 섬세한 동작, 어색하지 않은 모션과 캐릭터를 연구한 조정석 배우가 멋져 보였다. 본업에 충실한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참 멋진 법이다.


"엄마, 그런데 국내 항공사에서 쫓겨나도 외국어랑 비행 실력 되니까 일할 곳이 전 세계에 있네. 좋네.

역시 공부는 하고 봐야 해. 그죠?"


오늘의 결론, 본업을 잘하자. I'll be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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