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돌봄 Nov 09. 2024

올해 생일은 폭망이야.

"어머님, 이번 생신은 이탈리아서 보내셨네요. 축하드려요~~ 홍홍."

전체 가족 카톡방에 생신 축하 톡을 올린 날.

그날은 시부모님이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오시는 날이다. 

금요일 저녁, 남편은 여과 없이 부모님을 모시러 공항으로 향했다. 

여기서 나의 실수는 그다음 날인 토요일 잘 다녀오셨냐는 전화나 생신 식사를 일요일에 하자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토요일은 아침 일찍 실습을 가느라 일요일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종의 직무유기인 셈이다. 주말에 단 하루도 쉴 수 없었던 일정에 잠시 쉬는 시간을 포기하지 못했던 것이다. 


올해는 여러 가지 일거리로 나름 정신이 없었는데, 특히 하반기엔 책쓰기, 평생교육사 수업과 실습으로 혼이 빠지는 상황이었다. 공부방 수업도 해야 하고 샵에 가서 일도 해야 하고. 큰아이 학원을 바꾸게 되면서 상담을 다니고 정해야 하는 일이 동시에 다가왔다. 

세상에 안 바쁜 사람이 없고 핑계라면 핑계인 상황.

결국 난 시간 관리가 안 되는 사람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미역국이라도 끓여놓을 줄 알았다던 어머님은 서운하다 말씀하셨고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해 죄송하다 말씀드렸다. 

좀만 더 생각했다면 남편이 모시러 가는 길 미역국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을 텐데, 난 뭐가 그리 바빴던가 하는 생각과 일분일초 계산하며 사는 요즘 평일날 미역국 끓일 시간이 내가 어디 있나 이중적인 마음이 맴돌았다. 

설상가상으로 어머님은 그 서운함을 친정 엄마와 약간의 안면이 있는 샵 손님 앞에서 말씀하셨고 친정 엄마는 혼을 내건 이야기를 하건 둘이 만나서 할 가정사를 왜 손님이 있는 일터에서 하느냐며 역정을 내셨고, 두 분은 그렇게 교묘한 말다툼의 줄타기를 하게 되었다. 

중간에 끼인 나는 결국 나를 탓할 수밖에.


왜 챙기지 않아서 이 사단을 만드나. 왜 엄마 앞에서 이런 말을 듣게 하나.

어찌하여 시어머니 생신을 좀 더 살뜰히 챙기지 못했는가. 

왜 며느리만 챙겨야 하는가.

아들, 딸, 사위는 어떠했는가. 이번엔 나만 이랬나 하는 생각.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는 경조사에나 만날 사이인데 너무나 이물 없이 만났구나 싶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잠정적인 결론은 두 분을 앞으로 만나게 하지 않겠다 결심하고, 생신을 절대 잊지 않고 챙겨야겠다 하는 생각.

입천장이 까지고 몸이 피곤한 상황 속에서 하나하나 놓쳐진 일상에 난 말 그대로 멘붕이었다. 

대한민국의 여자라면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일과 가정의 양립. 매일 계속되는 저녁 식사 고민. 

여러 가지 역할을 맡은 이 땅의 여자들은 1인 다역 저리 가라 하는 삶이란 연극에 살고 있다. 


결국 이 일을 만든 건 나 자신이고 지혜롭지 못한 것도 나.

양쪽 어머니 마음을 속상하게 했으니 그야말로 불효가 아닌가. 

내 자식은 날 보고 뭘 배우나 하는 생각부터.

이래서 잘난 인간이 되어야 하나 하는 원초적인 생각까지.

양가 어머니께 후두려 말로 맞으며 혼이 나고 나니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뭐 하는 사람이길래 이 가을은 이리도 혹독한가 싶으면서도 현재 중요하다 생각하는 일에 몰두하고픈 마음에

두 분의 감정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까지.


지금은 두 어머니들과 거리 두기 중이다. 

늦은 생신을 챙겨드리고 온 날 이후, 어머니와도 엄마와도 일정의 거리 두기 혹은 회피하기를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친정 엄마 생신까지 잊은 나는 정말 설상가상이다. 

올해는 두 분의 생신을 다 제때 챙기지 못했고, 다음 주는 내 생일이 있다. 

이런 금상첨화가 있나.

본디 계획은 어머니 생신 때 찾아뵙고 당분간 여러 가지 경우의 수로 바쁠 예정이니 미리 양해를 구하고 일에 몰두할 생각이었고, 친정 엄마껜 낳고 키우느라 수고하셨으니 내 생일이 아니라 엄마를 챙겨드리려고 했는데. 이젠 모든 게 뒤죽박죽이라 어떤 스텝부터 밟아야 할지 모르겠다. 올해 생일은 정말... 어메이징 하다.


생일은 무엇인가.

왜 갈수록 이 날은 나에게 불편한가.

올해만 이러는 것일까.

세월이 흐르면 생일이 좋아질까.

서로 축하하고 축하받을 그 날이 왜 올해는 이렇게 되었을까.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나로부터 모든 것은 시작된다. 

이 일의 해답도 나로부터 나오겠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다이어리에 열심히 정리해보고 미리 써놓았지만 이렇게 놓쳐버린 두 분 어머니의 생신처럼 정리가 안된 일상이 문제인지도.


사진: Unsplash의Tim Mossholder



작가의 이전글 쓰는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