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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Nov 09. 2024

아프니까 마흔 넷이다.

토요일마다 평생교육사 실습을 하러 나간다.

학점은행제를 운영하는 교육원인데 학교 밖 학생들도 이곳에서 공부를 한다. 

7년 전 사회복지사 실습은 지역아동센터에서 했는데, 20일 동안 꽉꽉 채우고 잘 마무리했다.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간식을 챙겨주는 일이라 그다지 어렵지 않았고, 센터장을 보면 서류 더미와 간식 구입에 늘 파묻혀 있고 바빴지만 다정했던 기억이 있다. 아드님이 고등학교에서 전교 일등이라고 했는데 엄마가 선하게 사니 아이가 복을 받았나 싶을 정도였다. 


다시 돌아와 지금의 평교사(평생교육사) 실습은 뭔가 다른 느낌이다.

7년 전 젊은 엄마는 중년이 되었고, 일 년 가까이 계속되는 공부에 공부를 좋아하는 나조차도 내년엔 다시는 공부하지 않으리 굳게 다짐을 했다가 좋다고 했다가 감정이 새해 명절에 널을 뛰듯 한다. 

사실 지금의 세상은 평생이 공부고 교육이고 실전이다. 

직업과 직장의 경계가 모호한 핵개인의 시대라고도 한다.

아직은 많이 와닿지는 않지만 세상이 그렇단다. 


주중에 교육원에서 성인 상담을 하고 대안 학교 청소년들을 보면서 다른 삶의 모습을 본다. 

지금의 직장 외에 다음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들.

현재 직장에서 뭔가 더 나아가고 싶은 이들.

자영업자지만 강사로써의 또 다른 모습도 준비하는 사장님들(그중에 나도 있을지도.)

자격증 콜렉터가 되지 않아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뭐라도 부지런히 움직이고 준비해서 연결된 점하나 하나를 만들고 싶은 생각도 여전하다. 

대안학교 아이들을 보면서 내 아이들이 생각나고, 이다음의 삶을 준비하는 아이들이 어떤 마음일까 나의 청소년기를 대입해 본다. 



사진: Unsplash의 Jessica Pamp


토요일엔 주로 여러 평생교육 프로그램(도서관, 문화센터, 미술관, 박물관 등등)을 보러 가는데 보면 볼수록 할 일이 많은 느낌이다. 어떤 이들은 학원 할 거 아니면 필요 없는 자격증이라고 하지만 배움의 열정이 넘치는 요즘 세대를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듯싶다. 이 과정을 하면서 좋은 점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어른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나보다 어린 사람. 나이 있는 분들. 그들의 배경이 다 다양하기에 배우는 게 있다. 한때 기자라는 직업을 생각했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다양한 삶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였다. 많은 만남과 이야기 속에서 분명 글을 쓸 수 있는 글감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당시엔 글감이라는 단어도 쓸 줄 몰랐지만. 


성인학습자와 함께 하는 건 쉽진 않다. 각자의 사정이 있고 요구 사항이 있다. 그러나 여유 있다. 금전적인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다. 세상의 어떤 일이 와도 유연하게 넘길 줄 알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모습이 있다. 최근 친해진 50대 동기 언니는 삶의 여러 여유로움이 넘치는 사람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공연과 음악을 사랑하는 남자로 자랐고,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닌다. 은행원으로 명예롭게 퇴직하고 원예강사로 대학 전공을 살려 강사로써의 제2의 일을 하고 있다. 배려와 일머리가 있는 그분을 보며 느끼는 건 역시나 삶은 성실해야 한다는 것. 하나의 일을 잘 완수하는 게 얼마나 멋지고 중요한 삶의 태도인가 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배우는 사람들은 분명 발전이 있다. 

다시는 시험도 보기 싫고 실습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생각이 들다가도 다시 도전하게 되는 건  이런 사람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아직도 성장 중인 애 둘 엄마는 참 아이러니한 마음이다. 

호기롭게 자유를 선언했지만 여전히 강자에게 얽매어있고, 판단은 지혜롭지 않다. 

오늘 방문한 미술관에서 사진을 찍으며 건물 전시실로 들어가다가 2G 폴더폰 접히듯 넘어졌다. 두 무릎은 바닥에 쾅하고 닿았다. 인조잔디가 깔려 있어 다행이었다. 가방에선 핸드크림과 필사노트가 쏟아져 나왔다. 떨어트린 스마트폰이 가방 위에 얹혔다. 괜찮냐고 물으며 일으켜주는 동료 선생님들이 다가왔다. 괜찮다며 일어났지만 양쪽 눈가엔 눈물이 맺혔다. 아팠다. 많이 아픈 건 아니었다. 아마도 그건 '괜찮아요'라고 물어봐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 공부를 시작하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 그들에게서 또 인생을 배운다. 나도 그들에게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넘어진 사람에게 괜찮은지 물어봐주고 싶다. 오늘이 아니라 내일 더 아플 수 있다고 걱정해주고 싶다. 마음이 아프면 가슴이 미어지지만 몸이 아프면 마음까지 아파진다. 양쪽 무릎이 시리다. 아로마 크림을 많이 발라줘야겠다. 나이가 들어 글을 읽고, 책을 쓰는 건강한 할머니가 되려면. 


앗, 저녁에 발가락이 의자에 밟혔다. 피가 난다. 아프니까 마흔넷이다.


사진: Unsplash의 Tamara Bel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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