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김밥집
아들의 내성 발톱이 스멀스멀 다시 출현한 토요일 오후.
치료를 받고 내려오니 허기가 진다.
먹어도 먹어도 한창 배가 고픈 아들은 점심은 샌드위치로 때운 모양이다.
집에 가는 길엔 타코야끼를 사가기로 하고, 건물 일층의 김밥집으로 향했다.
김밥 체인점은 특유의 김맛이 있다.
김밥천국, 김밥랜드, 고봉민 김밥, 바르다 김밥 등등 다양한 브랜드가 있는데 우리 식구는 비교적 초창기 브랜드인 김밥랜드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곳은 별천지다. 여느 뷔페보다 화려한 음식 종류를 자랑한다. 김밥부터 국수와 가락국수, 각종 찌개와 볶음밥, 전천후 돈가스에 내장탕과 갈비탕까지 있으니 뭐 이건 말 다했다.
멸추김밥과 참치김밥, 치즈 라면을 시켜서 야무지게 먹었다.
반찬은 셀프로 무한대, 특유의 김맛은 보장된 맛이고 오독오독 단무지도 맛있다.
아, 세상에서 제일 맛난 식사는 남이 해준 밥인데 정말 아무도 이 말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머리 두건과 앞치마까지 야무지게 세트로 입으신 이모님들은 김밥도 일사천리, 주문도 신속정확이시다.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라 3인 1조로 움직이시던 이모님들은 이제 두 분이 먼저 식사를 한다.
정확한 시스템이다. 물과 반찬은 셀프이니 음식 주문과 정확한 전달만 하시면 된다.
메뉴 고르면서 망설일 때 먼저 말한 라면 물부터 올리시는 센스도 있다.
음식을 먹고 한껏 따뜻해진 아들과 나는 김밥집 앞에서 택시를 기다렸다.
그러다 문득 눈에 들어온 건 "가족 구함, 오후 3시부터 10시까지."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생각해 보면 유독 가족이라는 말을 직장에서 잘 사용하고, 가족이라는 단어에 의미를 많이 부여한다는 생각이다. '가족'이라는 말 하나에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가족이니 네 일 내 일 구분 없이 다 해야 할 수도 있고, 그만큼 친밀하게 대하겠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하나 유리에 붙여진 '가족 구함' 광고를 보며 이곳은 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일하는 곳이 가족 같을 수 있을까 과연. 가족은 너무나 다양한데 어떤 가족일까 하는 생각까지 맴돌았다. 가족이어서 오랜만에 봐도 반갑기만 하고, 어색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더 편하게(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만) 어떤 감정이든 단어는 마구잡이로 쏟아내기도 할 것이다. 가족이어서 참견하고 힘들게 하고, 너무나 아끼고 사랑해 주고. '가족'이라는 단어처럼 그 존재처럼 다양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사랑, 우정, 평화 이런 거 말고 너무나 끈끈하고 때론 진저리 나게 얽혀있는 이 관계성. 가족이라는 그 말.
머릿속에 떠오른 말로 정확히 표현할 수 없는 어떤 의미들과 생각들이 부유하다가 결국 이렇게 글이 되어 드러났다. 어떤 날엔 또 하나의 직장처럼 상명하복이 느껴졌다가도 위기의 순간(감정, 신체, 인생의 위기)엔 가족만큼 든든한 게 없고 너무나 함께 하고 싶으면서도 가장 멀리 도망쳐보고도 싶은 존재. 칼바람이 부는 주말 저녁은 가족과 함께 뜨끈한 칼국수나 삶은 굴을 까먹는 시간이 생각나면서도 한없이 생각에 잠기고 싶기도 하다. 끈덕지게 붙어 있으면서도 화내고 실망해도 결국 함께하고 싶은 가족. 탄탄한 주춧돌처럼 있어주길 바라면서도 멀어지고 싶기도 한 그 가족에 대해서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