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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3시간전

에스프레소의 맛

대화를 통해 한 사람의 취향과 살아온 인생이 드러난다는 사실은 신비롭다.


일주일의 며칠은 밖에서 점심을 먹는다. 

예전 직장 생활을 하던 기분이 난다. 그때보단 덜 힘들지만 말이다.

사실 한편으론 좋다. 재미도 있고.

나보다 더 언니들과 있어서 배우는 점도 많고, 오랜만에 동생 취급도 참 즐겁다.

젊은이들(2,30대 MZ세대, 우훗)과 시니어들이 공존하는 거리에 점심시간은 다양한 메뉴로 즐겁다. 

사실 점심시간의 낙은 '음식' 아니던가.

한 시간 정도 되는 귀하디 귀한 시간에 무엇을 나의 소중한 위장에 넣어줄지, 그 시간에 어떤 대화를 나눌지는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하다. 


함께 식사를 하게 된 동료 선생님은 점심시간이라는 취향에 또 다른 의미를 준 분이다. 

미술관과 고시촌, 학원이 즐비한 이곳은 비교적 저렴하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우리 할머니만큼이나 역사가 오래된 음식점들이 있다. 학생들은 집반찬이 나오는 8000원 백반집을 간다. 이름도 '오늘밥상' 반찬가게까지 타 지역에서 크게 하는 이 식당은 사장님의 환한 얼굴만큼이나 모든 음식이 우리를 웃음 짓게 한다.

오픈 시간인 11시 30분이 되기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있는 곳은 퓨전 한식집이다. 예를 들며 크림 순대 국밥이 있는. 결국 우린 30분을 대기하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먼저 나와 버렸지만. 미나리가 메인 테마인 곰탕 집은 깔끔한 국물 맛과 젊은 감성에 맞는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바로 옆 소품 가게에서 <미녀와 야수> 애니메이션 영화에 나오는 엄마 주전자오 아들 찻잔도 만날 수 있다. 빨리 밥을 먹고 싶을 때는 뜨끈한 콩나물국밥과 김치찌개가 나오는 풍남옥으로 가기도 한다. 식사 메뉴는 이렇게 다양해도 가는 커피 집은 딱 한 곳. 이곳에서 이 선생님 덕에 에스프레소 맛을 알게 되었다. 대용량 커피와는 다른 깊고 맛있는 커피. 작은 공간이지만 커피바로 운영되는 이곳은 젊은 청년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다. 동료 선생님의 추천으로 마신 '에스프레소 넛지' 아몬드 맛이 연하게 느껴지면서 씁쓸하면서 적당한 달달함이 입에 감돈다.






"선생님, 마셔봐요. 에스프레소를 입에 머금어봐. 그러고 나서 따뜻한 물을 마시면 정말 깔끔해.

어때요? 맛있어요?"


에스프레소 '넛티'

너무 맛있다. 

아, 이게 커피구나.

늘 에스프레소 원액을 드시는 엄마를 보면서 너무 쓰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마법 같은 맛이 나올 줄이야.

메뉴판을 다시 들여다보니 에스프레소의 종류가 다양하다.

하긴 모든 커피에 에스프레소가 기본 원료(커피는 잘 모르지만 이렇게 들은 기억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정말 그렇다. 기본 중에 기본. 맛의 표본.

원두를 얼른 갈아서 커피를 마시면 집에서 향기가 그렇게 좋다고 조용히 권해주시는 선생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편안하다. 여느 젊은 사람 못지않게 손이 빠르고 일을 잘하시는데(전직 은행원 현 원예강사) 직장 생활도 정말 성실하게 하셨을 거란 기운이 온몸에서 흘러나오고, 배려하는 섬세함도 남다르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고, 아들도 대학을 잘 보낸 분인데 겸손함이 배어 나온다. 십 년 후의 나의 모습이 저랬으면 하는 정도로. 


오랜만에 밖에 나와 일을 해보니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 배움의 기회가 커진다. 비단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배려, 더불어 편안한 취향이다. 나의 모습도 타인에게 어떤 식으로든 해석이 될 것을 생각하니 많이 궁금하다. 조급해 보이진 않는지 편안하게 보이지 않는 건 아닌지 혹은 다른 어떤 모습이 있는 건지. 커피를 많이 마시면 몸이 건조해진다며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데, 이런 에스프레소라면 깔끔하게 마실 수 있을 것 같다. 입안에서 가만히 굴려보고 머금어보고, 따뜻한 물 한잔으로 개운하게 마무리. 다양한 에스프레소 종류처럼 다채로운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어느 곳에나 필요한 에스프레소의 또 다른 모습처럼 기본이 탄탄해서 흔들리고 싶지 않기도 하다. 커피를 마시고 돌아가는 길 너무 맛있었다며 청년 사장님께 쌍따봉을 선사하고 나오는 길. 말없는 사장님은 미소로 화답한다. 커피숍 외부에 있는 바테이블에 올려놓은 커피잔을 누가 놓고 간 줄 알고 굳이 사장님께 전달하니 일부러 둔 것이었다며 말한다. 아, 이 오지랖. 


취향이라는 것이 정말로 소위 말하는 계급이 될 수 있겠구나 느끼며 에스프레소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취향을 알려주고 다정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동료 선생님께 감사하다. 사람이 제 아무리 본인이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대로 본다 하여도 스스로 느낀 부분은 거짓이 없을 테니. 이 겨울 에스프레소를 만난 것도 참 인연이다. 







당신의 삶의 질(quality)은, 당신의 관계의 질(quality)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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