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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돌봄 Nov 22. 2024

누구에게나 자유 의지는 있다.

급하게 실습원에서 돌아온 금요일 오후.

갑작스레 취소된 수업에 백만 년 만에 오후 시간이 여유롭다.

한창 공부에 재미를 붙인 친구라 못 오는 게 아쉽지만 열이 난다는 아이를 오라고 할 수는 없다.

요즘 날씨는 얼마나 다채로운지 없던 질병도 생길 요량이다.

간식으로 라면을 먹는 둘째를 바라보며 한가롭게 있는 시간.

도착한 필사책을 요리 보고 조리 보고 좋아하며 첫 장을 펼쳐본다.

역시나 택배는 즐거운 것.

책이 들어있는 택배는 더욱더 아름다운 것.

여러 종류의 일을 하느라 바빴던 하루가 저물어가고 문득 오늘 아침에 보게 된 실습원 여사님이 떠올랐다.


여유롭게 도착한 아침.

단골(한 달에 몇 번 안 갔지만 내적 친밀감은 맥시멈입니다) 커피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칼바람은 아니지만 차가운 기운이 감돌아 며칠 전에 마셨던 사과차가 생각났다.

계핏가루가 들어간 사과차는 예상밖의 부드러움과 따듯함이 있었다.

이렇게 맛있다니. 레몬차를 사러 갔던 터라 별 기대하지 않았는데 커피집 사장님의 추천으로 마셨던 사과차는 의외의 맛있음을 선사했고, 그 맛을 못 잊어서 향했었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한채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올라간 실습원은 여사님이 청소가 한창이셨다.

딱 봐도 연세가 있어 보이셨는데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문이 열리길 기다리며 다이어리를 쓰고 있었다.


사진: Unsplash의 Precious Plastic Melbourne


"여사님, 가방 아무 데나 늘어놓으시면 안돼요."

"여사님, 청소하시다가도 수업하러 학생들과 선생님이 들어가면 그만하셔야 해요."

"여사님, 이러시면 좋겠어요. 저러시면 좋겠어요."


그때마다 "네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반복하시던 여사님이 종국엔 "벽 쪽에서부터 청소하는 게 맞는 방법이라 그래요.(내가 알아서 잘할 테니 이제 그만 말하시오)"라며 참을 수 없음을 드러내셨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직장 생활이니 상사가 말하는 부분을 따를 수밖에 없는 걸 아는데, 좋은 말도 삼세번이라고 자꾸 이런저런 지적을 들으시니 짜증도 나실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간은 지시하는 말투, 나이가 들어서 일하는 자의 마음. 우리 누구나 나이가 들어도 일할 수 있는데 말이다. 

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나 또한 아이들에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음을 여실히 깨달았다.

피곤해하면서 때로는 한심해하면서.

거울을 들여다보듯 느껴지는 모습에 또 하나의 생각의 느낌표를 단 아침이었다. 

언어를 달리해볼 것.

잘하고 싶은 마음과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면서도 짜증 섞이고 한숨 섞인 표현을 얼마나 많이 해왔던가.

백 프로 바뀔 순 없겠지만 글로 꾹꾹 눌러써보는 시간을 갖는 이유는 손으로 직접 글을 쓰면서 새겨보고 다짐해 보기 위해서다. 그나마 손으로 써야 기억하니까. 


여사님의 직장 생활이 내내 평안하시기를.

나의 생활도 평안하니까.

세상의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여, 평안하시기를.


사진: Unsplash의Masaaki Kom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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