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농도와 밀도
소맥의 황금비율
1. 맥주잔에 소주와 맥주를 3:7 비율로 섞어주기. 부드러운 목 넘김을 원한다면 중간에 숟가락으로 가볍게 내리쳐주세요.
2. 5 : 5 비율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3. 소주잔에 소주 9, 맥주 1의 비율로 섞어 보세요. 꿀맛입니다.
나름의 소맥의 황금비율에 관한 의견들이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사실 하나는 '각자 황금 비율은 다르다'는 그것.
상대방에게 나의 제조법을 소개하고 맛보게 할 수 있으나 최종 선택은 각자의 몫이라는 거다.
누가 보면 술 깨나 하는 사람인 줄 알겠지만
사실 술보다는 분위기에 취하며 안주홀릭인 사람으로서
소맥의 황금비율을 논하는 것이 굉장히 외람되오나 너는 너만의 것 나는 나만의 것이듯
각자의 영역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제 그 수준은 다 극복해 버린 15년 차 결혼 생활, 혹은 시월드 생활.
회사로 치면 책임이나 과장급은 아닐까 싶지만(직장 생활 몰라요, 틀리면 알려주세요.)
여전히 말의 티키타카는 존재한다.
며칠 전 대역병이 창궐하던 그 시절에도 단 한 번도 걸리지 않았던 코로나를 경험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순간 혈압이 낮아져 기절까지 한 친구는 온 얼굴에 멍이 들 정도로 갑자기 쓰러지고 말았다고 했다.
게다가 하나뿐인 딸까지 열이 펄펄 끓어 대학병원으로 이동하던 그때 운전 중이던 남편에게 걸려온
시어머니의 전화에 마음이 불편하다 했다.
3일이나 되는 연휴에 전화 한 번 없냐고, 아버지는 감기에 걸리셔서 식사도 제대로 못하시는데 연락 한 통 없냐는 질책 아닌 질책.
사람 좋은 남편은 허허 그러게요 저희가 좀 무심했네요 라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더랬다.
노인네들 속상하게 하면 뭐 하겠냐고 평소에도 너털웃음을 짓는 남편이었다.
가까이 산다는 이유로, 혹은 큰아들 큰며느리라는 이유로 늘 챙기고 들여다보게 되는데 마흔이 넘어가면서 친구는 못하는 건 못한다고 하고 자신을 좀 더 챙기고 싶어 했다.
걱정하실까 봐 코로나에 걸려서 아프다는 말씀은 안 드리고, 어머님은 계획대로 캠핑을 간 줄 아신다고 하셨다.
어머님께 전화를 드려 사실은 아팠다. 코로나로 쓰러졌다. 손녀딸도 열이 나서 마냥 누워있다 설명하였다 했다.
"그렇게 서운하셨을까?
둘째 아들네, 딸네 다 긴 연휴에 해외여행 나가고 우리는 겨우 캠핑 가기로 한 것도 아파서 못 가는 상황이었는데 연휴에 찾아가지 않은 게 그렇게도 서운하셨나 봐."
상황 설명을 들으신 어머님은 괜한 전화를 했다며 후회를 하셨다 했다.
자식에 대한 기대.
서운함.
며느리로서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던데, 조그만 달리했다면 이렇게 서로 섭섭하진 않았을까.
친구는 괜히 뒷얘기 한 거 같다며 마음 불편해했지만 그렇지 않다. 잘 쏟아냈다 이야기해 주었다.
더 이상 우리는 내 얘기만 했다며 혹은 시댁 욕을 한 것 같다며
후회하거나 밑 보이는 나이가 아니기에
그럴 수 있어. 다 그렇게 살아.라고 이야기 해줄 수 있기에.
우리 시부모님 참 좋은 분이야 라며 이야기하는 친구에게
"알아, 당연하지."라고 말해주었다.
사정을 모르시는 어머님은 서운하고
나름 마음 쓰고 사는 큰며느리는 속상하고.
하지만 이제 그 정도는 넘길 수 있는 우리다.
남과 남이 만나 가족이 되는 게 쉽던가.
결혼 초반에 서로 알아가는 과정이니 더 조심스럽기도 하고 오히려 더 갈등이 일어나기도 한다.
자칫하면 며느리가 아들 어머니 사이 갈라놓는다고 소리를 듣거나
친정에서 뭐 배워왔니를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있는 상황들.
하지만 마흔이 넘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짐을 느낀다.
며느리 입장에서 어머니를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게도 되고
시어머니 입장에서 며느리는 이제 익숙한 내 식구가 되는 느낌이 든다.
각자의 상황마다 다르겠지만 말이다.
'김미경의 마흔 수업'을 보면 40대가 되면서 누군가에게 이래라저래라 간섭받기 싫어진다는 제나씨의 이야기가 나온다. 스스로가 교만해진 것 같다며 걱정하는 제나씨에게 마음 치유 전문가이자 작가인 신가율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교만해진 게 아니라 그 나이가 그래요.
40대가 넘으면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그런 현상을 '마음이 큰다'라고 하는데 제나씨 마음이 크는 중인 거죠.
사람은 살면서 두 번 마음이 커요. 사춘기가 첫 번째예요.
성장하는 몸을 마음이 받쳐줘야 하니까요.
두 번째가 바로 마흔이에요.
나이 들어가는 몸을 마음이 감당해야 하니까요.
나의 늙어감을 지혜롭게 받아들이고 인생 후반전을 준비할 수 있도록 성숙해지는 과정이에요.
진정한 어른의 마음이 되어가는 과정.
마음이 어른이 됐는데 남한테 간섭받는 게 좋을 리 있나요? 당연한 거예요.
이제 더 이상 친구들과 시월드를 이야기하며 분노하진 않는다.
그러기엔 이미 마음이 많이 커버린 40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유치하다며 치부하진 않는다.
다 지나온 과정이면서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임을 알기에.
사람 사이에서의 적당한 거리.
사람마다 다른 언어의 농도.
부담스럽지 않은 표현의 밀도.
각자에게 맞는 말의 황금비율 정도는 이제는 만들 줄 아니까. 느낌 아니까.
교과서적인 말은 차치하고서라도 이거 하나만은 분명하다.
내 마음대로 살아요.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아직 인생 시계의 아홉 시에 있는 우리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