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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그 중간에서

by 마음돌봄
상당한 재산을 가진 미혼의 남자가 아내를 바란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 문예출판사 개정판

고등학생 때 읽었던 책의 번역과는 다르지만 당시 이 첫 문장은 꽤나 의미 있게 다가왔다.

작품에 여러 명문들이 있지만 이 첫 문장만큼 강렬한 것은 없으리라.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뭔가 지루한 일상의 편린들이라고 생각을 했고, 결혼하는 과정이 전부인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왜일까? 그런 첫인상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밖에 없었던 힘은 어디에서 나왔던 것일까? 그저 영국의 속 편한 귀족들의 이야기라 하기엔 결코 작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쩌면 첫 문장의 강한 인상이 책을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한 이유일 수 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오만과 편견>의 처음 제목이 <첫인상>이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다. <오만과 편견> 만큼이나 어울리는 제목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첫 만남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가. 내 경우에 있어서 첫 만남은 인간관계에서 꽤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첫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고, 대부분의 경우엔 그 첫인상이 앞으로의 관계에 있어서 결코 적지 않은 부분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이 흐른 후, 좋았던 첫 만남이든 오해가 있던 첫 만남이든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여간해서 처음의 느낌을 많이 믿는 편이다. 이후에 어떤 계기로 이미지가 바뀐다고 하여도 처음에 누구나 공을 들이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엔 그렇다. 그건 최대한 좋은 기억을 주는 것이 서로에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도 있다. 당연히 비관론자는 아니지만 당장 내일이라도 만나지 못하거나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길 수 있는 게 인생이라면 상대방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일일 것이다. 이 생각에 물음표를 띄워 준 것은 주인공 '엘리자베스'였다.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이 있는 나에게 첫인상이 다가 아니다고 자유롭게 말하는 사람이 그녀였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피력하고, 굴복하지 않는 모습. 소위 할 말 다하고 사는 그녀의 모습에서 작은 해방감을 맛보았는지도 모른다. 몇 백 전 소설 속 그녀는 지금의 사람들처럼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독립적이고 직설적이며 자존심이 강하다. 게다가 21세기가 원하는 비판적 사고를 하는 인물로 소위 '창의적 인재'에 가깝다. 여전히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은 많으며 하고 싶은 말을 꾹 누르고 사는 사람도 많다. 그런 이들에게 엘리자베스의 야무진 말본새는 일말의 해방감마저 안겨준다. 편견은 있으나 잘못을 인정할 줄 알고, 자신의 장점을 드러낼 줄 아는 그녀를 싫어하는 이는 결국엔 없다.









“캐서린 부인, 저는 더 이상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 생각은 이미 알고 계시잖아요.”
“그렇다면 그 애를 차지하기로 작정했다는 건가?”
“그런 말씀은 드린 적이 없습니다. 저는 다만 스스로 판단하기에 제가 행복해지는 방향으로 행동할 생각이고, 부인이든 누구든 저와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의 의견에 좌우되지 않을 겁니다.”


자신의 행복을 이렇게 확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 돈, 권력, 미모 등 나보다 우위를 차지한 사람 앞에서 말이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보다 더 크다고 여겨지는 사람 앞에서 불조절에 실패해 잔뜩 쫄아든 떡볶이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좋은 인상을 못 남길까 봐 혹은 착해야 한다는 이유 등 스스로를 옭아매는 이유는 다양 찬란하다. 위의 장면은 재벌집 사모님이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돈다발을 날리는 장면으로 요즘 드라마에서는 흔히 쓰이는 클리쉐다. 사실 이 작품의 모든 면들은 현대 대중매체와 작품에서 교과서처럼 소비되어 왔고, 로맨스 작품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베넷 가의 다섯 딸은 이상적인 일등 신붓감부터 당당한 여성, 아직은 철없는 여인들, 가슴속엔 불같은 사랑을 품고 있지만 겉으론 드러내지 않는 모습까지 다 드러내고 있다. 이 중에서 단연코 사이다를 날리는 캐릭터는 당당한 태도의 엘리자베스다. 돈과 권력에서 나온 위세라며 결코 주눅들것이 없다고 말하는 엘리자베스는 어떤 상황에서도 할 말은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잠시 시련은 있을지언정 타인에게 인생의 주도권을 빼앗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작품 속 세계관에서 가장 부유한 미남자인 다아시는 오만하게 보이지만 약자에게 친절하고, 가족을 (특히 여동생을 극진히 챙긴다) 사랑하는 츤데레의 원형이다. 자신의 선한 행동을 떠벌리지도 않는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오해와 편견에서 시작된 혐관 관계였으나 종국엔 진정한 사랑으로 거듭난다.


결국 사랑이란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을 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상대에 맞춘다고 해서 외적인 매력이 가히 핵폭탄 급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감을 지키며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 사랑도 다가오는 것이다.


오만함을 인정하라.

편견을 가졌더라도 시인하고 사과하라.

차라리 오만하고 편견 있는 사람이 되어라.

그 중간이 어정쩡함이 인생의 항해를 망설이게 한다.

한 번쯤은 지나치게 뜨거워도 보고, 새파랗게 차가워도 봐라.

극과 극은 통하게 되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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