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여름이 다가오는 건지 청량한 바람이 귓가를 스치지만
그마저도 약간 서늘하게 느껴져 셔츠재킷을 더 여몄다.
환승하기 싫어서 약간 더 걸어서 한 번에 집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정류장으로 향했고,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 고등학생들 행렬에 하교 시간임을 인지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거나 쇼츠를 보는 아이들, 친구들과 자잘한 욕을 섞어가며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들.
덩치는 커도 여전히 아이인 그들을 보며 집으로 하교하고 있을 내 아이가 떠올랐다.
바깥 풍경이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휙휙 지나가는데 들리는 말, 정녕 요즘 고등학생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나?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드라마의 영향이나 레트로 열풍도 있는 줄 알지만 우리 엄마 세대의 유명 가수 노래를 알다니. 물론 가수 이문세는 올타임 레전드다. 그래도 내 아이 또래의 입에서 익숙한 노래 제목을 들으니 많은 생각이 오갔다. 내 품에 쏙 들어오던 아이는 이제 나보다 훨씬 커졌는데, 아이 또래의 학생이 이문세의 노래를 듣는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나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오만가지 생각이 블렌더에 갈려 하나가 되듯 드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 이문세의 '조조할인'을 듣고 신나 했었는데, 빅뱅이 '붉은 노을'을 리메이크해서 부를 때도 이미 이문세의 노래인걸 알았었는데, 이젠 다음 세대도 여실히 원곡자가 누군인지 아는 노래라니. 이렇게 인간은 문화를 향유하고 시대를 초월해서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뻔한 말이지만 소위 대중문화의 힘이란 게 이런 걸까. 엄마가 듣던 이문세의 노래가 나에게 흐르고, 또 그다음 세대에게 흐르고. 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는 이제 에어팟으로 자리를 옮겼다. 세상은 여전히 넓지만, 또 그만큼 좁아졌다. 몇 시간을 달려 다른 도시로 나라로 떠나야 하지만 온라인 툴 하나면 지구 반대편의 사람도 당장 만날 수 있다. 멀고도 좁은 세상에서 우리는 계속 이렇게 살아가겠지. 엄마의 오래된 라디오가 지금은 사라졌지만, 작은 기계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아직도 줄이어폰을 쓰는 나는 아날로그함이 좋다.
어쩌면 간단한 블루투스 연결조차 하지 않는 귀차니즘이 발동한 것인지도 모른다.
무선마우스는 학교에서 이동 수업을 하다가 잃어버렸고, 여전히 줄이 달린 마우스를 쓴다.
20대에 버스로 출근할 때 듣던 엠피쓰리에 몇 가지 노래가 담겨있다.
이젠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만 버스를 탈 때면 가끔씩 그 노래들이 생각난다.
스마트폰 하나면 온갖 대중매체를 누릴 수 있는 시대에도 여전히 줄 이어폰을 쓰는 이유다.
종이 전화기가 기다란 실로 서로 연결된 것처럼 과거의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선 같은 느낌이랄까.
여전히 과거는 현재와 통하고 미래로 통한다.
마치 내가 미래인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