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통역되나요?

잘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by 마음돌봄

통역사라는 직업은 나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공부에 대한 중압감과 지방대 출신이라는 지금 나이라면 하등 신경 쓰지 않았을 그런 열등감에 똘똘 뭉쳐서 지레 겁먹고 포기하고 말았던 직업.

그 때문일까. 드라마나 영화에서 통역사가 나오면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과 앞으로 전개될 내용에 괜스레 마음이 두근거린다. 게다가 이탈리아, 캐나다, 유럽,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풍경까지 볼 수 있다니 이거야말로 일석이조. 로맨스에 두근거리는 게 아니라 주인공의 직업과 배경에 두근거리는 나, 괜찮나요?


<이 사랑 통역되나요?>는 다중언어 통역사와 여배우의 사랑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지만 그 이면엔 또 다른 독특함이 있는 작품이다. 영화 <노팅힐>의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그건 좀 아니고 사실 사랑 이야기라기보다는 사람 사이 소통에 관한 이야기다. 반듯하고 안정형의 남자 주인공 호진은 다중 언어 통역사로 뛰어난 언어 재능과 소설까지 쓴 경험이 있을 정도로 지적이며 진국처럼 다정한 사람이다. 감정적이고 솔직하며 사랑받고 싶지만 그만큼 버림받는 것에 두려움이 있는 여자 주인공 무희는 그런 호진을 좋아한다. 물론 그런 무희의 언어가 세상 그 어떤 말보다 해석이 어렵지만 호진도 무희에게 점점 스며든다.


서로 호감이 있고 좋아하면서도, 드러나지 않았던 과거와 현존하는 옛사랑의 그림자까지 서로 알지만 둘은 닿을 듯 말 듯 서로 대화가 어려웠다. 분명 서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깊숙이 닿았다가 멀어지고, 연결된 듯하다가 다시 끊어지는 그런 무선 통신 같은 관계.


극 중 호진을 아끼는 소설가 영환은 말한다.

세상에 언어는 세상 모든 사람 수만큼 있다고.

각자의 언어로 떠들기만 하니 서로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고.


그 말에 호진은 단순히 말만 통역해서 전달하는 게 아닌 진정한 언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무희의 불안이 만든 인격 도라미가 등장했을 때 호진이 그만큼 받아줄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그녀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마음, 무희를 사랑하는 마음이었으리라.


평범한 러브 스토리가 아닌 고딕 소설 같은 전개가 처음에 필요할까 싶었지만 인생에 밝음과 어둠이 공존하듯이 인간의 삶엔, 또 사랑엔 양면이 있다. 두 사람이 마음이 통하고 하나가 돼 가는 것은 결국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일이니까.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말은 자신의 두려움과 상처를 감추기 위한 말이었고, 자꾸만 불안해하는 것은 실은 불안하고 싶지 않다는, 믿고 싶다는 다른 표현이었음을.


이 드라마를 정주행 하면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감정선을 더 잘 따라갈 수 있었다.

2회 정도 보고 다음 이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설레지만

연달아 작품을 보는 것도 굉장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딕 로맨스 혹은 상처와 구원에 대한 이야기, <이 사랑 통역되나요?>

결국 그들의 사랑은 잘 통역되었고, 서로의 마음에 잘 닿을 것이다.

자석의 N과 S극처럼, 반대가 끌리는 것처럼.

바벨탑이 무너지고 수많은 언어로 세상이 갈라졌지만 이렇게 연결되는 것처럼.


난 과연 얼마나 주변 사람들과 잘 대화하며 살고 있을까.

서로의 언어를 잘 이해하고 있는 걸까.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에둘러 가며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는 건 아닐까.

점점 말을 잃어가는 사람처럼 마음과 다른 말이 나올 때가 많다.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인격이 나오기도 한다.

마치 무희에게 도라미가 있듯이.

불안과 두려움이 혹은 서운함이나 슬픔이 잠식하기 전에

내 감정부터 잘 들여다봐야겠다.


우리 서로 잘 통하고 있나요?

내 말이 잘 들리나요?

당신 말을, 당신의 언어를 잘 '듣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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