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8. 스마트폰의 무용함에 관하여

by 마음돌봄

민정이와 만나기로 한 건 시내의 쇼핑몰 앞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식날 결석한 그녀에게 졸업 앨범을 주기로 했다.


'왜 결석했지? 많이 아팠나?'


당시엔 집 전화로 서로 이야기하고 약속을 잡던 시절이었다.

대학생이 되면 핸드폰을 사주겠다는 아빠의 말에 빨리 대학생이 되었으면 했지만 사실

불편하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지냈다.


오후 1시, 겨울이었지만 민정이를 만날 생각에 들떠있던 난 오분 정도 미리 가서 기다렸다.

만나서 뭘 하지, 앨범이 좀 무겁긴 하지만 그래도 같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면 진짜 신나겠다 생각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렸다.


오후 2시, 민정이가 아직 오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외우지도 못해서 근처 공중전화를 사용할 수도 없고, 혹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민정이가 와서 놀랄까 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한편으론 화도 났다.


'뭐야, 바람 맞히는 거야? 졸업 앨범까지 내가 갖고 왔는데. 이게 뭐야 날도 춥고.'


결국 민정이는 그날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고, 그녀의 앨범은 고스란히 다시 내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민정이도 나도 누구도 먼저 전화하지 않았다.

난 나대로 화가 났고, 민정이는 그녀대로 사정이 있었을 거다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을 텐데.

우린 십 대 소녀답게 SNS디엠으로 연락을 서로 했을 거고 약속이 어긋나는 일도 없었을 거다.


다시 민정이를 만난 건 재밌게도 각자 첫 아이를 출산하고 난 직후인 산후조리원이었다.

우린 십 년이 넘게 같은 곳에 있었던 거다.

어영부영 시간이 지났고, 감정은 퇴색되어 버렸지만 민정이를 십 년 만에 보고 느낀 건 그저 반가움이었다.

산후조리가 끝나고 다시 만난 우린 고등학생 때처럼 살갑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지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추억을 되새겼다. 졸업 앨범은 십 년 만에 민정이에게로 돌아갔다.


우연처럼 만났지만 계속된 인연은 되지 못했던 민정이.

지금은 더 오랜 시간이 흘렀고, 이젠 서로 어떻게 사는진 알지 못한다.

스마트폰이 있지만 이런 인연도 있다.

아이들처럼 애써서 인스타를 들어가 파고파고 찾지도 않는다.

그저 흘러가는 대로 두고 싶은 시절 인연도 있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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