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내 몸이 기억하는 최초의 위로
알코올중독센터에서 일을 했던 시절, 신기한 현상 하나를 목격했다. 바로 거기에 계신 대부분의 분들이 '성격이 급하'다는 것이었다. 하루는 먹기 명상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방울토마토를 드리자마자 그 자리에서 토마토를 다 먹어치우신 분도 있었다.(명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성격이 급하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 쉽게 긴장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대까지는 자연스럽게 술을 좋아하게 되었다. 술 한잔에 온 몸이 녹아내리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그런데 요즘 새롭게 생긴 취미가 하나 있다. 바로 ‘목욕탕’에 가는 것이다. 20대까지만 해도 ‘대중목욕탕 = 더러운 곳’이라는 편견이 있었다. 그리고 어떻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을 수 있단 말인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부끄러운 일이다.
그랬던 사람이 이젠 일주일에 한 번은 목욕탕에 가서 벌거벗은 채로 사람들 앞을 돌아다닌다. 처음에는 반드시 옷을 다 입고 머리를 말렸지만, 이제는 목욕탕에서 나오자마자 선풍기 앞으로 향한다. 시원한 바람과 묘한 자유로움이 온몸을 통과한다. 아아, 자유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CEO 같은 사람들한테 수영이 좋다잖아. 물이 사람을 이완시켜 주니까.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 수영을 시작했다. 물론 내가 CEO라서가 아니라 일이 많은 날에 긴장을 풀어줄 무언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일 오전으로 수영 시간을 선택한 것이 잘못이었던 것일까. 나보다 1.5배에서 2배는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들이 체력이 어찌나 그렇게 좋으신지. 모든 레일이 전속력으로 자유형 배영 접영으로 가득 찼다. 그 속도에 수영장 전체가 거대한 파도를 일렁였고, 그 파도는 내가 수면 위로 나오는 순간 얼굴 전체에 싸대기를 때렸다. 어쩐지 수영이 끝나면 화장실을 가고 싶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예전이라면 일이 많은 날 저녁에 맥주를 한 캔 먹는 것으로 피로를 달랬지만, 이제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하면 술 없이 몸을 이완할 수 있을까? 물이 많은 곳. 그러나 내가 특별히 움직일 필요는 없는 곳은 없을까?
그렇게 찾은 곳. 바로 대중목욕탕이다.
처음엔 찝찝함 반, 호기심 반으로 목욕탕에 들어섰다.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는 것조차 어색했다. 그래도 다행히 나보다 1.5배에서 2배는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먼저 옷을 휙휙 벗어주셨다.
그렇게 벌거벗은 채로 목욕탕에 입성하자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다 같이 옷을 벗고 있는데, 정말 1도 야하지도 않고, 생각 보다 사람 몸이 거기서 거기로 느껴졌다는 것이다. 여자들끼리 모여 누가 옷 태가 좋네, 누가 날씬하네 그렇게나 떠들던 세상이 맞나 싶었다. 물론 날씬한 사람 통통한 사람 다양했지만 거기선 그냥 정글 속 유인원 중 1명일 뿐이었다.
또 하나 마음에 든 것이 있는데, 바로 탕의 종류가 여러 가지라는 점이었다. 집에서 반신욕을 할 때에는 10분이 지나면 숨이 안 쉬어지는 것이 참 아쉬웠는데, 여기선 10분이 되기 전에 탕을 나와서 다른 곳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온탕 - 노천탕 - 냉탕 - 습식 사우나 - 노천탕 - 냉탕 - 온탕 - 안마탕 - 건식 사우나 - …를 무한 반복했다. 나름 그 안에서 만들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미친 듯이 목욕탕을 돌아다녔고, 어느덧 시간은 1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목욕을 해서 몸이 풀어진 건지, 하도 목욕탕을 돌아다녀서 운동이 된 건지. 아무튼 집에 돌아온 그날.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고, 수면 마취를 한 것 마냥 기절을 했다. 이렇게나 피로가 풀릴 수 있다니. 술은 다음날 두통만 가져다주었는데 이렇게나 건강한 방법이 있었다니. 목욕탕을 만든 선조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이완을 위해 선택했던 많은 것들이 있다. 심호흡, 요가, 명상, 산책. 혹은 아예 일을 줄이거나, 평소에 ‘긴장하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단번에 뛰어넘는 것이 바로 ‘물’이었다. 이완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생각을 줄이자고 생각하지 않아도, 물에 들어가 가만히 있기만 하면 내 몸은 알아서 긴장을 풀어주었고, 머리는 알아서 생각을 줄여주었다.
체온보다 살짝 높은 39도씨의 물에 다리를 담근다. 부드러운 물결이 종아리를 감싸고, 따뜻한 기운이 서서히 몸을 타고 올라온다. 골반, 허리, 그리고 가슴까지 물이 차오르자 어딘가 모를 압박감이 느껴진다. 사르르 - 온몸을 누르는 물의 무게감. 마치 엎드려 누워 심장을 압박할 때 느껴지는 안도감과 같달까. 그러나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한 방식으로.
이내 그 무게감이 숨으로 차오르고.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이 느껴질 때. 체온보다 훨씬 낮은 25도씨의 차가운 물로 향한다. 아까와 같은 대범함은 없다. 발끝부터 아주 서서히, 들어가는 모든 순간마다 화들짝 놀란다. 온몸에 닭살이 돋고, 서늘함을 넘어 시퍼렇게 차가운 기운이 심장에 가까워질수록 몸은 공포감에 휩싸인다.
하지만 진짜는 여기서 시작된다. 우리는 따뜻한 물에서 몸이 이완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우리의 몸은 차가운 곳에서 이완된다. 온탕에서는 교감 신경이, 냉탕에서는 부교감 신경이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이 아이러니한 감각의 세계 속에서 혈관은 확장과 수축을 반복하고, 신경은 이완과 긴장을 반복하며 혼란스러웠던 몸의 리듬을 다시 회복한다.
물. 그곳은 우리가 탄생한 곳이자 모든 생명의 기원이다. 태초에 하느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기 전에, ‘빛이 생겨라’라고 말씀하기도 전에, 어둠과 함께 있던 것이 바로 물이다. 당신이 태어나 세상의 빛을 보기도 전에, 어둠과 함께 살았던 곳이 바로 물이다.
물은 무엇도 묻고 따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당신이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따지며 그대를 내칠 것인지, 거둘 것인지 결정하지만 물은 그렇지 않다. 그 씨앗이 어디서 나고 자랐던 어떻게든 생명을 부화시킨다. 그것이 물이 주는 무한한 사랑이자 치유의 근원이다.
세상을 위해 움직이고 또 움직이며 뜨겁게 메말라 간 당신. 태양빛 아래에서 스스로를 불태웠던 우리들. 이제 다시 어둡고 축축한 태초의 그곳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그곳으로. 어쩔 수 없이 나의 심장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릴 수밖에 없는 그곳으로. 다시 내일을 맞이할 힘을 선사하는, 물이라는 집으로.
그렇게 술이 떠나가고 물이 찾아왔다. 폭주 기관차처럼 일과 공부를 끝낸 날에는 여전히 맥주 한 잔이 당기지만, 이제는 맥주 보다 매실 주스 한 잔을 택하기로 했다. 이건 다음날 숙취도 없고, 살도 안 쪄서 죄책감도 안 든다. 뇌세포가 파괴되는 일도 없으니 나의 공부 실력은 더 성장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 이렇게 하나의 취미가 늘었다. 이 취미는 몇 년, 아니 몇 달이나 갈까? 나중에는 목욕탕이 아니라 다른 이완 요법이 있다며 난리를 칠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100세 인생에 1년이라도 건강한 취미를 가지면 그래도 인생의 1%는 행복한 시간으로 채워낸 거니까.
행복한 고민이다. 이번 주에는 또 어떤 사우나를 갈까? 생각 보다 깨끗하고 예쁜 찜질방이 별로 없다. 요즘 MZ 세대들에게 찜질방이 유행이라던데 아주 좋은 현상인 것 같다. 아무래도 젊은이들에게 한번 유행을 하면 더 세련된 모습으로 거듭날 테니까. 얼른 찜질방이 상향 평준화가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 물론 이미 많이들 가고 있던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