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의 심리상담보다, 1번의 목욕탕이 나을 때가 있다. 세상에는 마음을 치유하는 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것보다 물에 몸을 담그고 있거나, 강아지를 꼬옥 안고 있거나, 가만히 앉아 햇빛을 쬐고 있는 것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라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한 번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와 싸움이 나서 감정이 격정적으로 끌어 올랐을 때, 회사에서 감정적으로 머리끝까지 분노가 차올랐을 때. 오히려 밖에 잠깐 나가 숨을 고르고 돌아오거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돌아온 뒤 상황이 잘 풀리는 경험 말이다.
우리 너무 격해진 것 같으니 잠깐만 쉬었다가 다시 이야기하자.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머리로 향해있는 에너지를 잠시 몸으로 돌려내는 것. 미친 듯이 돌아가는 팬을 잠깐 꺼두고, 잠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
나는 진짜로 나를 사랑하고 있나?
혹시 이런 사람들을 본 적 있나? '나 진짜로 너를 사랑해'라고 말은 하지만, 정작 행동은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 상대방의 마음을 애태우고 불안에 떨게 만드는 나쁜 XX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그렇게 하고 있다면? 말로는 '괜찮아'라고 타이르지만, 정작 내 몸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면? 그게 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치유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괜찮다고 타이르고, 지금 상황이 과거와 다르다는 것을 말로 알려주어도 내 몸이 안정되지 않는 이상 더 이상의 성장은 어렵다. 몸으로 느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리고, 인정하고, 허용해 줄 수 있을 때 우리는 회복될 수 있다.
상담의 40%는 내담자의 몫
이런 말이 있다. 심리 상담의 (무려) 40%는 내담자가 해내는 것이라고. 즉, 상담자가 아무리 애를 써도 내담자가 여전히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되어 있거나, 과거의 기억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어 어떠한 말도 들리지 않는 상태라면 상담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감정 인식불능증, 감각 인식불능증이라는 말이 있다. 트라우마나 힘든 일에 자주 노출되었던 사람들이 겪는 현상 중 하나이다. 아픔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몸에서 느끼는 감정과 감각을 차단시켜 그 상황을 버텼던 이들. 하지만 그 상황이 다 끝난 지금까지도 그들의 몸은 여전히 그때를 기억하며 두려움에 마비되어 있다.
몸이 심하게 아픈 경험을 떠올려 보라. 이때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몸을 낫게 하기 위해 충분히 쉬는 것 뿐일 것이다. 이것은 마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다. 만약 아직 과거의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이라면, 상담자가 말하는 어떤 조언이나 해결책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몸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말은 정 반대의 이야기로도 설명될 수 있다! 바로 내담자가 안정되면, 그 상담의 (무려) 40%는 성공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담자가 안정되고 나면 상담자와 함께하는 어린시절 기억의 탐험, 사회성 훈련, 직업 스킬 기르기 등의 영양제는 아주 쏙쏙 흡수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몸을 안정시킬 수 있을까? 내면 소통의 저자 김주환 교수는 '편도체 안정화'라는 이야기를 하며 수많은 명상법을 안내한다. 실제로 명상과 요가는 심신 안정에 매우 큰 효과가 있다. 다만, 트라우마가 심한 사람들에게는 명상과 요가가 오히려 부작용을 낼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실제로 내가 아는 분은 명상을 하면서 자아가 분열되는 체험을 하면서 극심한 고통을 호소했다. 그러니 명상 중에서도 가만히 앉아 있는 명상보다는, 걷기 명상이나 음식 명상처럼 조금은 움직임이 가미된 명상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또한 요가 역시 종류를 아주 잘 선택해야 하는데, '인 요가'나 '소마 요가'처럼 정적인 요가는 안정에 도움이 되지만, '아쉬탕가요가'나 '빈야사요가'를 선택하면 몸과 마음이 동시에 안드로메다로 가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사실 명상과 요가가 전부는 아니다. 기독교나 천주교를 믿고 있는 분들이라면 명상과 요가가 조금은 멀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일상의 감각에 귀를 기울이는 연습을 추천하고 싶다. 물, 빛, 소리, 음식 등등.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은 지천에 널려 있다. 다만 그것이 얼마나 특별한지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을 뿐.
앞으로 몇 가지의 글을 통해 일상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왔던 감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예를 들면 무한한 에너지를 주는 따스한 햇빛, 말없이 나를 지탱해 주는 땅,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이어가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호흡’과 ‘움직임’과 같은 것들 말이다...
때로 말보다 빠르게, 이론보다 정확하게 자기 자신과 다시 연결될 수 있는 방법. 그것은 특별한 비법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있는 것임을. 사랑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임을. 글로 나마 여러분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