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받은 내담자들은 수년 뒤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by 정찬영


상담자나 내담자가 작성한 에세이를 사랑한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타기를 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팔딱팔딱 마음이 뛴다.





요즘은 상담자들의 필독서 중 하나인 『치료의 선물』을 읽는 중이다.


얄롬은 도서관을 거닐며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많은 베스트셀러들이 '000 잘하는 법'이라는 식으로 조언과 팁을 적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그 깨달음을 발판으로

상담자로서 살며 후배 상담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조언'을 엮은 책을 발간하게 된다.



그렇게 쓰여진 수많은 조언 중 기억에 남은 구절 하나,


환자들이 수년이 지나 치료에 대한 경험을 돌이켜 볼 때, 무엇을 기억하는가?



얄롬은 말한다. 환자들은 상담자의 통찰이나 해석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주로 치료자들이 한 긍정적인 격려의 말이라고.


맞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교육분석의 순간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을 꼽으라 하면

'나의 가치를 알아봐 준 상담자들의 말'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에게 한 마디의 칭찬을 하기 위해, 백 개의 문장을 읽어야 한다.

바로 얄롬이 말하는 '예리한 칭찬'을 위해서다.


말로만 하는 칭찬이 아니라, 그 사람이 그런 환경 속에서 그런 사람으로 자라난 것이

진정으로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가슴 깊이 이해하기 위해서다.



요즘 읽는 또 하나의 책, 『대상관계이론과 상담: 호모 렐라티우스 되어 가기』


대상관계이론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과, 상담 현장에서 대상관계이론이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한 책이다.


처음에는 대상관계이론의 이론을 읽으며

'도대체 유아의 욕망을 성인들이 어떻게 알지'라는 의심 + 너무 장황한 정신 분석에 대한 거부감에

조금은 이해하기가 힘들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론이 실전에 적용되었을 때의 무게감은 엄청났다.


DSM-5에서는 자폐증, 조현증, 성격장애, 우울증 등을 그저 다양한 정신병리 군의 하나로 보지만,

대상관계이론에서는 달랐다.


아이가 얼마나 어렸을 때 불안정한 애착을 경험했느냐에 따라
그가 앓는 정신병리의 심각도가 달라진다.


16개월 이전에 불안정한 가정환경을 경험하면 조현병이나 조울증과 같은 심각한 정신병리로 이어지며(가장 심각한),

16-24개월의 역경은 성격장애 수준의 정신병리로(심각한),

그 이후는 신경증 수준의 정신병리(덜 심각한) 혹은 건강한 정신을 가진 인간으로 자라난다.



이러한 이론을 알게 되면

36개월도 안되는 어린아이가 겪었을 역경을 상상하게 된다.

내담자의 힘듦과 고난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상담자의 마음은 얼마나 깊어져야 하는지,

하는 문제들이 더 무겁게 와닿는다.


내담자를 진심으로 칭찬하기 위해선
그들의 깊은 역사를 알아야 한다


내담자들이 상담 장면에서 얻어 가는 단 한 줄의 칭찬.

그것이 비록 아주 평범한 문장이라 할지라도,

누구라도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 할지라도,


그 한 줄을 위해 수많은 이론과 경험을 쌓아가야 하는 것이 상담자의 자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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