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같은 고민을 털어놓는다.
'어머니와의 관계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고민을 들은 많은 사람들의 결론 역시 같은 방향으로 흐른다.
내담자가 가족과 분리되어야 할 것 같다
딸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고,
딸이 버는 돈을 본인이 관리하려 하고,
누가 보아도 폭력적인 구조에서 살고 있는 내담자들.
“이건 정서적 학대야.”
“관계를 끊어야 해.”
“경계를 설정해야 돼.”
우리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내담자가 가족과 분리되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나 역시 '가족과의 분리'를 주야장천 외쳐왔다. 지난 10년간.... 누군가는 냉정하다고 이야기할 만큼 경계를 중요시했고, 경계를 만들며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은 마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 엄마라면 어떨까?'
'딸들이 엄마로부터 쉽게 독립하지 못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내 마음이 약해진 걸까? 가해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피해자가 되어 버린 것일까?
세상은 생각보다 비상식적인 곳이다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들은 사실 꽤나 고학력에, 아주 기능을 잘하는 사람들이죠. 그런데 조금만 세상을 나가도 기상천외한 일들이 정말 많이 벌어져요.
지난 학기, 임상 심리 교수님이 해주신 말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상담심리대학원에 진학할 정도면, 사실 아주 이성적이고 기능을 잘하는 사람들일 거라고. 하지만 진짜 세상은 생각보다 험악하고, 상상도 하지 못할 '비상식적인 일'들이 넘쳐난다고.
그래, 그러면 그 비상식적인 환경을 '상식'적인 환경으로 만들어야지.
이성적이지 않은 사람들이 잘 기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
처음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유다.
그런데 이상하다.
치유가 된 사람들을 경험하면 할수록,
상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경험할수록,
'상식'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 된다는 것을 마주하게 되는 요즘이다.
어쩌면 비상식적인 일이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상식'과 '비상식', '가해자'와 '피해자', '정상인'과 '비정상인'이라는 틀이 사라질 때,
스스로 그토록 혐오하던 '비상식'적인 일을 감행하기 시작할 때,
(예를 들면 감정적으로 폭발한다던가, 외모를 엄청나게 꾸민다던가, 돈에 대한 욕심이 생긴다던가, 남을 혐오하기 시작한다던가)
오히려 치유가 시작되는 사람들이 있다.
즉, 내 안의 그림자를 수용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어두운 모습이 사실은 '어둠'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당연히 갖게 되는 본능이라는 것.
인간이라는 동물이 갖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때.
세상은 조금 더 '이해할 만한', 그리고 '살아갈만한' 곳으로 변하게 된다.
왜냐면 그 비상식적인 일이, 오히려 자연의 섭리에 충실한 것이구나,
그리고 나 역시 그런 짐승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나르시시스트라는 용어를 넘어서
분명 많은 내담자는 가족과 분리될 필요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모든 상담의 최종 목표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중요한 결론이다.
하지만 그 '결론'을 내기 이전에,
그 결론에 가닿기까지 내담자가 거쳐야 할 마음들,
아무리 나쁜 어머니라도 쉽게 분리되기 어려운 그 본능적인 마음을 헤아려본다.
살다 보면,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올바른 판단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같이 물에 빠져 죽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나는 엄마와 달라'라고 생각했다가도
사실은 내 안에도 그토록 싫은 엄마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그 모든 아이러니를 통과한 후에야 비로소
내가 그래서 엄마와 쉽게 헤어지지 못했구나.
내가 그래서 그 사람을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사랑을 갈구하고 있던 거구나.
싶은 이유들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