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페르시아어 수업과 실존주의 심리치료 사이에서
영화 <페르시아어 수업> 줄거리
나치 수용소로 실려가는 한 유대인. 그는 죽음 앞에서 얼떨결에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병사가 그를 한 장교에게 끌고 가게 되는데...
알고 보니 그 수감소에는 페르시아어를 배우고 싶어 했던 장교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거짓말쟁이 유대인'은 페르시아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페르시아어를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삶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요즘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으며 실존주의 심리치료와 삶의 의미 등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흔히들 "삶에 의미가 무엇인가요"를 물으면 인간의 인생 자체가 어떤 의미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의미 치료의 창시자 빅터 프랭클이 중점을 두는 삶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같은 수용소에 갇혀 있어도 어떤 사람은 '돼지'처럼 살고, 어떤 사람은 '성자'로 사는 것을 목격해 버렸기 때문이다. 같은 유대인을 팔아먹는 카포(우리나라로 치면 친일파), 반면 자신의 친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사람처럼...
즉, 의미 있게 사는 사람에게는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이고 의미 없게 사는 사람에게는 삶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는 흔히 '의미'라고 생각하면 희생, 사랑, 헌신과 같은 거창한 단어를 생각한다. 물론 그런 것도 굉장한 의미가 담겨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의미는 지극히 '현실'에 있다는 것이다.
로고테라피 치료에서 의미란 철저하게 현실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한다.
페르시아어 수업의 주인공은 '살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그리고 그 거짓말 덕분에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한다.
그렇다면 그의 행동은 의미가 있는 행동인가? 의미가 없는 행동인가?
거짓말을 한 것이니 의미가 없는 행동인가? 아니다. 그는 악에 맞서기 위해 살아남는 방법을 선택했고, 끝까지 자신의 기지를 발휘해서 살아남기를 선택한다.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상황에서 자신의 '잠재성'을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고.
즉, 페르시아어 수업의 주인공은 '생존'이라는 인간의 존엄성을 선택했고, '지혜'라는 인간의 능력을 실현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을 믿어준 사람을 배신해야 하는 죄를 저지르기도 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존엄성 위에 자리 잡을 수 없었다.
의미 있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은 오히려 의미를 지워버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행동이 의미가 있는가?'를 매번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의미 있는 삶을 살겠어!'라고 다짐하며 의미를 추구하는 역시 의미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페르시아어 수업의 주인공은 그의 거짓말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행위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른 채 살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는 경우를 더 많이 봤을 것이다. 심지어 남을 돕는 것조차, '남을 도와야 해'라는 마음보다, 진짜 상대방의 상황에 공감이 가서 돕는 경우에만 그 의미가 빛을 발한다.
'과잉 의도'라 불리는 이 현상은 마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행복한 행동을 하는 인간'과 같다. 사실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인데 말이다. 그래서 의미치료에서는 의미를 추구하기 위한 낙관적인 행위는 오히려 지양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미 있게 살 수 있습니까?
의미를 추구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하며 찾아오는 것이다. 마치 체스 챔피언에게 '이 상황에서 가장 절묘한 수는 무엇입니까'를 묻는 것처럼.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질문에 '책임감'을 통해서 대답함으로써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163~164p에서 편집
즉, 매 순간 의미있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이 지금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아차림으로써 내릴 수 있는 것이고, 내 삶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 이야기를 자신만의 '영화'로 이어가는 선택을 총합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의미치료에서 '의미 있음'은 매 순간 행하는 선택 속에서 실현된다. 그렇게 매 순간 의미 있는 행동을 선택하다 보면, 삶의 의미는 저절로 따라오게 된다.
마치 영화 속 모든 장면이 마지막에 되어서야 어떤 의미인지 꿰어지는 것처럼.
페르시아어 수업의 주인공이 했던 거짓말들이, 결국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는 마지막에 가서야 알게 되는 것처럼...
더불어, 우리는 의미가 있는 행위가 뭔지는 잘 몰라도, 적어도 '돼지처럼 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직감적으로 잘 아는 것 같다. 어떤 선택을 앞두고 '인간적으로 이건 좀 아니지 않나'하는 죄책감이 든다면... 결국 안 좋은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런 선택만 아니라면, 삶은,,, 어떻게 해서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선물 보따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