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삶, 바쁜 사람들

한국 특유의 치열함, 정상 지향적인 문화,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by 마인풀 라이프

지금, 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한국에 들어온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이곳의 여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끈적끈적한 습기, 어디서나 에어컨을 찾게 되는 날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성한 초록잎이 자라는 이곳이
내가 살던 건조한 지역보다 더 좋게 느껴진다.


최근 들어 미국 생각이 자주 난다.
여기 맛있는 음식들이 너무 많고,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소중하고,
아기가 하루하루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며 뿌듯하지만—
그럼에도 문득, 미국의 다양성과 자유가 그리워진다.


요즘은 자주 길거리를 걷는다.
익숙해졌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풍경들이,
이젠 낯설게 눈에 들어온다.
모노톤의 옷을 입은 사람들,
길을 걸으며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않는 모습,
신호등이 깜빡일 때 잰걸음으로 뛰는 사람들,
버스를 잡으려 달리는 사람들,
햇빛을 피하려 양산을 쓰는 사람들,
공기와 바이러스를 걱정해 마스크를 쓰고 다니는 사람들—
수많은 장면들을 마주하지만,
사실 그리 놀라운 장면은 별로 없다.

어딜 가든, 그저 기대했던 만큼의 풍경들.


뉴욕에서 살던 때는 달랐다.
자극이 넘쳐났다.
길거리나 지하철에서 무심코 걷다 귀를 사로잡는 음악 소리에 고개를 돌리게 되고,
그 재능에 놀라 조용히 미소가 번지던 기억.
공원을 지나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만든 재즈 밴드의 공연,
그 음악보다 더 인상 깊었던 건 연주하는 분들의 얼굴이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그 음악을 만들고 있을까?
또한 상상하지 못했던 옷을 입고 모델처럼 거리를 걷는 남자,
눈을 사로잡는 하이힐에 시선을 멈췄다가
옷까지 완벽하게 매치된 멋진 언니를 마주했던 순간들.


하지만 한국의 거리에서는
자유, 삶, 문화가 묻어나는 느낌보다는
그저 바쁘게 움직이는 도시의 리듬이 느껴진다.
어떻게 보면, 살아가기 바쁜 문화다.


외국 생활을 하며 좋았던 점 중 하나는,
대화 주제가 꼭 '돈', '성공', '먹고사는 것'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더 많았다.
그걸 '자유'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물론 어떤 분야든 깊이 들어가면 결국 사람의 본질을 마주하게 되지만,
외국 생활은 그 자체로 ‘조금은 다른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였다.
그 여유가 참 좋았다.


한국은 치열하다.
특히 어느 정도 잘 나가기 시작하면
삶은 더 치열해진다.
‘정상’이라는 목표가 생기고,
힘들게 쌓아 올린 것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사람들은 더 불태우며 일한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사람은 자신을 더 몰아붙이게 된다.
그 게임을 즐긴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생이 점점 고달파진다.


그 정점은 분명 매력 있다.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으니까.
돈, 성공, 명예...
그 모든 것이 내 삶에 대한 자부심을 만들어주고,
타인의 부러움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박수를 받기 위해 오늘도 달린다.


그래서 한국이 좋으면서도,
한계가 느껴진다.
사람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살기에
소비자 입장에서는 삶의 질이 높아진다.
음식이든, 서비스든, 상품이든
공급자들은 끊임없이 더 좋은 것을 고민하고 제공하려 애쓴다.


하지만 우리는,
단지 수요자가 아니라 공급자이기도 하다.
그 사실을 알기에 삶은 더 팍팍해진다.
더 치열해지고, 더 지쳐간다.


그렇게 치열한 도시를 걷다가, 문득 삶의 속도를 되돌아보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끊임없이 앞만 보고 달리고 있다.
오늘 하루를 살아내는 것도 쉽지 않은데, 늘 내일의 목표를 좇는다.


하지만 삶은, 언제든 멈출 수 있다.


몇년 전, 큰 사고를 겪고 나서 생각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까?”


그 질문은 나를 잠깐 멈추게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여름의 한가운데에서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다시 떠올려본다.


조금 더 나를 위한 하루,
그게 진짜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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