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본 ‘정’과 ‘눈치’
며칠 전, 어린이집에서 내일 야외활동이 있으니 아이에게 운동화를 신겨 보내달라는 공지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에겐 운동화가 없었다. 최근 발 사이즈가 바뀌었고, 아직 새 운동화를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자주 신는 신발이 몇 켤레 있었고, 활동에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선생님께 물었다.
“아, 저희 아이는 운동화가 없는데요. 그냥 편한 신발과 양말 신기면 안 될까요?”
선생님은 놀란 표정으로 답하셨다.
“아, 운동화가 없으세요? 그래도 운동화 신기시는 게 좋으실 텐데요. 하원하고 얼른 하나 장만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말에 순간 압박감이 몰려왔다. 아이는 별문제 없을 것 같았지만, 선생님의 말에 맞춰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 한편으로는 ‘꼭 지금 사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쿠팡을 뒤졌다. 새벽배송이 되는 제품만 골라 눈치 보지 않으려고 얼른 주문했다.
외국에 살면서 좋았던 것 중 하나는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였다.
부모님, 사회, 지인, 낯선 사람 누구에게도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살아도 됐다.
한국에 오니 다시 눈치를 보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조금만 앞이나 뒤가 파인 옷을 입으면
“그 옷 별로야. 딴 거 입어.”
“돈 줄 테니가 옷 사입고 와.”
이런 반응이 돌아온다.
괜히 불필요한 갈등 만들기 싫어 대충 ‘무난한’ 옷을 입고 나가게 된다.
미국에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남편 옷 입고 나간 적도 있었다. 편하니까.
누구도 내 옷차림에 뭐라 하지 않으니까.
그게 나에게는 자유였다.
한국은 연예인이나 아티스트가 아닌 이상, 사람들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는 무언의 분위기가 있다.
그리고 나조차도 튀고 싶은 사람이 아니기에 그 분위기에 맞추려 한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건 ‘편안함’이다.
그날 기분에 따라 화장도 안 하고 모자 눌러쓰고 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나갔다가 후회한 적도 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같이 깔끔하게 차려입고 나온 걸 보면
‘내가 너무 신경 안 썼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엄마는 말한다. “여기선 병원 갈 때도 단정하게 입고 가야 해. 너무 후줄근하게 가지 마.”
병원인데?
아무리 외모로 판단한다지만, 한국은 ‘그 기준’이 더 날카롭고 조직화된 것 같다.
물론, 눈치라는 게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말하지 않아도 분위기를 파악해 남을 배려하는 센스,
타인을 불편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노력—
이건 분명 좋은 눈치다.
하지만 눈치가 ‘사회적 압박’이 되는 순간, 그것은 사람을 위축시키는 힘이 된다.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우리 아이에게 이런 문화를 어떻게 가르칠지.
다만 확실한 건, 무언의 압박으로 눈치를 익히게 하지는 않고 싶다.
나는 우리 아이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눈치가 아닌 자기 기준으로 행동하고,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통해 스스로 배우는 그런 아이로.
“눈치는 배려일까요, 압박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