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나를 키우던 방식, 손녀에게는 왜 다를까?

같은 사람, 다른 사랑

by 마인풀 라이프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아가는 할머니가 낯설었던지 나만 졸졸 따라다녔다. 내가 곁에 있어야만 안심하는 듯했고, 엄마는 그저 조용히 지켜보았다. 억지로 관심을 끌려 하거나, 다가가려 애쓰지는 않았다. 그저 흐름을 지켜보는 쪽을 택했다.

하지만 내가 바쁘거나 자리를 비우게 될 때면, 엄마는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가와 놀아주려 노력했고, 노래도 불러주고 춤도 춰보았다. 처음엔 멀찍이 떨어져 있던 아가는 어느새 그 마음을 알아챈 듯, 점점 마음을 열었다. 몇 주가 지나자 아가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할머니’로 바뀌었다.

이젠 내가 곁에 있어도, 할머니 손을 더 먼저 잡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할머니 손을 이끌고 주방으로 가 밥을 달라고 하고, 놀다 심심해지면 할머니 옆에 와서 앉아달라고 손을 내민다. 어쩌다 순위가 이렇게 뒤바뀔 수 있을까 신기하면서도, 그 교감이 참 대견했다.


우리 엄마는 늘 말했다.
“나는 너희 셋을 키우면서 이렇게 웃으면서 놀아줄 여유가 없었어.”

딸 셋을 혼자서 키우다 보니, 하루하루는 책임과 의무감의 연속이었다. 밥을 챙기고, 아픈 곳이 없는지 살피고, 말을 안 듣는 딸 셋에게 커지는 건 목소리뿐이었다고 했다. 사랑보다 ‘통제’가 더 시급했던 날들. 그 시절의 엄마는 웃는 엄마가 아니라, 버텨내는 엄마였다.

그런 엄마가 이제는, 나에게 조언을 해준다.
“아이를 많이 칭찬해 줘야 해.”
“하고 싶은 걸 존중해 줘.”
“친구처럼 대하되, 믿음을 잃지 않게.”

과거의 육아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한편으론, 왜 그땐 그렇게 못해주었을까 싶기도 했지만, 나도 아이를 키워보니 알겠다. 성격이 바닥까지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라는 걸. 그저 하루만, 한 아이만 말 안 들어도 속이 터지는데, 엄마는 셋을 한 번에 감당했으니.

엄마는 늘 말했다.
“나는 아프면 안 됐어. 나 쓰러지면 너희 셋을 돌볼 사람이 없었거든.”
그 절박함이 엄마를 더 강하게 만들었고, 거칠게도 만들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엄마는 그때 그 순간마다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지금, 손녀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여유와 따뜻함이 담겨 있다. 이젠 엄마가 아닌 ‘할머니’로서, 그저 예뻐해 주는 사랑을 마음껏 주고 있는 것이다.


말은 안 통하지만, 할머니와 아가 사이엔 분명한 교감이 있다. 함께 장난치고, 웃고, 손을 맞잡고 춤을 추는 그 모습은 세대 차이를 훌쩍 뛰어넘는다. 나이 차이가 70살이 넘는 두 사람 사이의 공감과 애정은, 정말 보편적이고도 아름다운 것이다.

3세대가 한 집에 산다는 건 아가에게 참 특별한 경험이다. 미국에선 보통 하루 종일 보는 사람은 남편과 나 둘뿐. 할머니, 할아버지를 ‘매일’ 본다는 건 드문 일이다. 아이에게는 다양한 사랑을, 다른 세대의 손길을,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기회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기 낳기 전에는 3세대가 한 집에 산다는 걸 상상도 못 했다. 답답하고,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나이 들어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 되니, 이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알겠다.

이건 아가에게도, 우리 부모님에게도, 나에게도 모두 소중한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특별한지, 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아가가 기억하진 못할지라도…
그 온기만은 마음에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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