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곳에서 다시 이방인이 되다
한국에 들어온 지도 벌써 7년이 되어간다. 이번에는 18개월 된 아가와 미국인 남편과 함께 한국에 입국했다. 7년 전에는 2주 정도 짧게 머물다 갔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우리 가족은 3개월 정도 부모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남편도 일을 잠시 쉬게 되었고, 아가에게도 ‘한국’이라는 나라를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아직 어려서 기억은 못 하겠지만, 단어 몇 개라도 배우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2006년, 나는 한국을 떠난 뒤 뒤돌아보지 않았다. 중학교 시절, 미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면서 처음으로 한국 사회에 대해 질문을 품기 시작했다.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선생님의 말, 부모와의 관계, 모두가 비슷한 방향을 향해 달리는 라이프스타일—그 모든 것이 갑자기 “왜?”라는 질문으로 다가왔다. 그 질문들은 나의 의식을 두드렸고, 답을 찾지 못한 나는 혼란과 반항심에 휩싸였다. 그 시절은 나에게 어두운 시간이기도 했다. 결국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고, 몇 년 후 한국을 떠나 해외로 나갔다. 그 이후로도 십 년 넘게 거의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런데 2년 전, 어렵게 아이를 갖고 나서 다시 질문이 생겼다. 평생 김치 생각 한 번 안 하고 잘 살던 내가, 임신하고 나서는 김치 없이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다. 물냉면도 마찬가지였다. 임신 중반엔 한국 마트를 찾아다니며 물냉면을 냉장고에 쟁여두고 하루에 한 그릇씩 먹어야 속이 시원해졌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들었다.나는 한국말을 하지 않고, 문화적인 고정관념과 멀어진 삶을 살았지만, 몸이 힘들 때는 결국 김치와 냉면을 찾게 되었다. 그렇다면 내 아이는? 이 아이에게 한국문화를 어느 정도 알려줘야 할까? 얼마나 영향을 받게 할까? 나는 결국 한국인 부모 아래에서 자라 한국인으로 살았다. 아무리 외면하고 살아도, 내가 겪고 배운 것들이 내 안에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아이에게도 필요하다고 느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대화, 김치에 담긴 감정, 문화 속에 흐르는 정체성—all of that mattered.
그렇게 우리 가족은, 보통이라면 몇 달 살아보지 못했던 곳—한국에서 3개월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17시간의 비행을 거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남편, 아기, 그리고 나. 아기는 미국 여권으로 입국했지만, 이미 18개월이 된 지금 김치를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꼽을 정도로 ‘속은 한국인’이 되어 있었다. 입국 심사대에 서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제 미국처럼 괜히 걱정 안 해도 되겠구나. 여긴 내 나라니까.’ 녹색 여권을 내밀자, 입국 심사는 순식간에 끝났다. 여권에 도장을 찍어준 공무원은 모르는 분이었지만, 오랜만에 마주한 한국인의 얼굴이 반가웠다.
짐을 기다리며 둘러보니, 모두 한국인이었다. 미국 공항에서는 다양한 체형과 키, 스타일의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지만, 여긴 키도 비슷, 스타일도 비슷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도 그 속에 녹아 있었다.
'아, 이랬었지?'
그러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아기용 접이식 침대가 나오지 않았다. 인포데스크에 가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정말, 왜 이리 친절하신지. 그리고 그 직원—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분이었는데, 왜 이리 피부가 맑고 뽀얀지. 나의 주근깨 가득한, 화장기 없는 얼굴이 순간 의식되었다. 게다가 정말 친절하셨다. 아기 침대가 경유 중 분실된 것 같다고 미안하다며, 집 주소를 물어보셨다. 한국말은 가끔 했지만, 모르는 한국인과 이런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 건 거의 10년 만이었다. 그 순간, 정작 집 주소가 기억나지 않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는 나 자신이 조금 우스워졌다. 짐을 다 찾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모르는 사람들과 가득 찬 공항 공간이었지만, 이상하게 반가웠다.
편의점에서 물을 사러 갔는데, 내가 뭘 고르는 건지 사람들을 구경하는 건지 정신이 없었다.
옷차림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미국 공항과 달리, 여기 사람들은 모두 깔끔하게 입고 있었다. 바지 길이도 딱 맞고, 옷도 단정했다. ‘원래 이랬었나?’ 화장실도 깔끔했고, 조명도 마치 호텔 라운지처럼 편안했다.
나는 그 안에서 잠시 낯선 편안함을 느꼈다.
그리고 부모님이 마중 나오셨고, 우리는 그렇게 집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나는 조용해졌다.
앞으로 3개월, 한국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그리고 공항 인포데스크의 그 피부 좋은, 친절했던 분의 얼굴이 다시 떠올랐다.
이상하게 따뜻한 감정이 차 안 가득 번지며, 나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